채원병의 아침 묵상(83) - 약속의 땅에 살자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83) - 약속의 땅에 살자

정원교회 0 2505
교민경제도 어렵고, 이국땅에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지성인이었고, 그럴듯한 직장을 가지고 살았지만, 이곳에서는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교민이 많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이민을 왔나, 자괴심이 들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을 나그네 인생에 비유한다.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인 것은 우리의 가치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궁극적인 삶의 실존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시공간에 갇혀 있는 삼차원적 세계에 있는 어느 장소, 예를 들어 우주의 어느 곳이 아니다. ‘하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이 황홀경 가운데 다녀 왔다는 셋째 하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다. 

인류 최초로 하늘나라로 올라간 사람이 에녹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365세를 살았다. 창세기 6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언뜻 에녹은 36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들린다.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팔구백은 쉽게 넘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5절은 에녹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선지자 엘라야도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왕하 2:11). 인류 역사상 최소한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 

에녹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사람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도 하늘의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성도들이다. 

이스라엘백성은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체험하며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평불만 가운데 살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 묻혔다. 

애굽은 바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나님을 경외함도 없고 우상을 숭배하는 땅이다. 약속의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곳을 지키는 자들은 네피림의 후손인 거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0장 2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을 세례에 비유하고 있다. 세례를 받아 성도가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처럼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애굽땅이기도 하고, 광야이기도 하며, 약속의 땅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애굽땅일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세계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광야일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지만, 만족하며 살기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바로 약속의 땅이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할지라도, 때로는 광야처럼 모든 것이 부족할지라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약속의 땅이다. 그들은 이미 하늘에 속해있는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 안에서 하늘나라의 삶을 산다. 돈과 권력과 섹스와 세상문화와 문명이라는 거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늘나라의 삶을 산다. 

요셉은 이런 삶을 산 대표적인 사람이다. 요셉은 열일곱 한참 나이에 형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는가? 눈물로 밤을 지샌 날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처지나 한탄하며 세월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 요셉은 자신이 처한 불행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애굽이라는 불신의 땅, 우상숭배의 땅이 요셉에게는 약속의 땅이며, 기회의 땅이었다. 

성도란 하늘에 속한 자가 되는 것이며, 그 전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사람이다. 하늘에 속한 자,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결코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요셉처럼 버려진 땅을 기회의 땅으로 삼고, 약속의 땅으로 바꾸어가는 사람이 성도다. 

성도는 애굽에 머무는 사람도 아니고, 광야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는 애굽에서도, 광야에서도 하늘의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며,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요셉처럼 약속의 땅에서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애굽처럼, 혹은 가나안 땅처럼 불신의 땅이요, 우상숭배의 땅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현재의 위치가 바로 약속의 땅이다. 요셉은 노예로 지낼 때도,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불평하거나 비관하며 살지 않았다. 자신이 처해있는 그 자리, 이방인의 땅에 노예로 버려진 그 자리를 요셉은 약속의 땅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다. 한탄하며 살지 말자. 하나님께서 섭섭해 하신다. “내가 너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았는데, 네가 스스로 고아처럼 사는구나” 정말 섭섭해 하신다. 어떤 처지에 있던 간에, 우리는 모두 약속의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가 딛고 서있는 이 땅, 이 자리가 기회의 땅이요, 약속의 땅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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