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84)-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84)-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정원교회 0 2510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가 있다. 우리는 모두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태어났다는 내용의 노래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은 그분의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을 누리면서 산다는 뜻이리라.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사랑 가운데서 사는 삶일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아무리 고되고 피곤해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말 한 마디에 모든 피로가 거짓말같이 풀려나간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은 그 기쁨이 얼마나 더 하겠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기쁨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쁨이다. 이런 마음의 상태를 평강이라고 한다.

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어도 이런 평강을 누리며 살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고, 먹고 마시며 활동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살아계실 때, 비로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주님과 동행을 한다는 말은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살아 계신 것을 말한다. 만약 주님께서 마음 속에 살아 계시지 않다면, 어떻게 주님과 동행을 할 수 있을까?

동행이란 ‘go together’ ‘함께 간다’는 뜻이다. 이인삼각경기처럼 주님과 한 발씩 묶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동행의 한자를 풀어보면 뜻이 더 선명해진다. 동행
同行)에서 ‘동()’자는 ‘한 가지’, same’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주님과 한 가지로 행동한다’, 주님과 한 마음, 같은 마음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 한 가운데 살아계시고, 우리 속에 살아계신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며, 주의 사랑을 누리며 산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런 사람이 주의 사랑 안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신자들이 누리는 복된 삶이다.

그런데 주님 따로, 나 따로의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주님과 따로 사는 사람,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이 부류에 속할 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 삶 가운데 주께서 주시는 평강도 없고, 기쁨도 없다. 삶 가운데서 주께서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한다.


주의 사랑을 원하지만, 주의 사랑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산다. 주를 사랑한다지만, 실제로는 주를 사랑하며 살지도 못한다. 주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 주의 계명이 우리 마음 가운데 살아있을 때, 우리는 주께서 내 안에 살아계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는 자요, 주님을 사랑하는 자며,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주신 계명의 핵심은 사랑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 계명을 제자들에게 수도 없이 강조하셨다. 사람은 자신이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 그러므로 사랑의 계명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마음 속에 담아두고 지켜야 할 주님의 유언이다.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자식은 부모의 유언을 가슴에 새겨두고, 그 말을 지키며 산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며 산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주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14:15, 21, 23). 요한복음 14장에서만 세 번씩이나 이 말씀을 강조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고 아무리 입술로 고백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을 드려도, 실제로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주에 대한 사랑을 찬송과 기도로 수도 없이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를 사랑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주도 그를 사랑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주의 사랑을 제대로 누리며 살기 원한다면, 먼저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사랑을 해야 사랑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형제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주님의 사랑을 알 수 있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의 삶을 사는 자가, 주님의 사랑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다.

사랑의 향기가 나지 않는 믿음은 생명이 없는 조화와 다를 바 없다.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믿음은 알맹이가 없는 가라지다.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우리 안에 주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는 사랑에 있다. 사랑 안에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다. 신자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사랑을 통해 예수의 생명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1 3 14)


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