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85) - 온유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85) - 온유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정원교회 0 3448

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불교신자들은 표정이 온유한데, 기독교인들은 왜 빡빡한 느낌을 줍니까?” 사실 나도 불신자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라, 내심 뜨끔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문자 그대로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리라. 이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괜히 덩달아 마음이 푸근해지고, 평안해진다. 따뜻함이 전해져 온다. 기독교인들 중에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적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온유한 마음의 반대는 차갑고 강퍅한 마음일 것이다. 강퍅하다는 것은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는 뜻이다. 마음이 차갑고, 까다롭고, 고집이 센 사람,,,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편한 대화가 잘 안 된다. 사소한 일에도 언성을 높이고, 날을 세우며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 안에 따뜻함도, 평안함도 있을 수 없다.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은 강퍅한 마음이 온유해지는 것을 말한다. 온유한 마음은 바로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멍에는 소나 말 같은 짐승의 어깨에 씌우는 막대기를 말한다. 그래서 보통 억압이나 무거운 짐이란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순종이란 뜻이다.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 곧 순종의 마음을 배우라는 뜻이다. 온유해진다는 것은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살던 사람이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나의 강함이 죽고 주님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상태다.

민수기 12장 3절은 모세를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모세는 바로의 왕자로 자랐다. 그렇지만 나이 사십이 돼서는 히브리 사람으로서 자기 동족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행 7:23). 그러다 하루는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몰래 그 이집트 사람을 쳐서 죽여 모래 속에 감추었다. 그런데 이 일이 발각이 돼서 이집트 왕 바로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다.

광야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해서 아들도 낳았지만, 광야에서의 그의 삶은 외롭기 그지 없었다. 첫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이다. 게르솜은 ‘거기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라는 뜻이다. 광야에서의 나그네 삶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자기 첫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을까?

모세는 왕궁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떠나 광야에서 양이나 치면서 40년 동안 나그네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 40년은 모세가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이집트 병사를 때려 죽이던 혈기가 다 죽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좋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온유한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생활 40년 동안 연단하셔서 온유한 자가 되게 하시고, 모세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 사용하셨다. 모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온유해진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약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한없이 강한 자가 되는 것이다.

팔 년 전 전주안디옥교회에 간 일이 있었다. 교회 선교관 건물에 들어가서 이층으로 올라가자, 복도 저 편에 천사가 보였다. 잔잔히 빛나는 얼굴이 어찌나 온유하고 평안하셨던지, 천사처럼 보였다. 그날 복도에서 처음 뵌 분인데, 할머니께서 자신이 묵고 계신 방으로 데리고 가셨다.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는 아프리카에서 15년 간 일하고 계신 선교사셨다. 이 할머니 선교사님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다.

십오 년 전, 아들과 며느리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선교를 간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손주나 봐주고 집안 일이나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따라가셨단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도착하고 나서 아들이 바로 말라리아에 걸려, 한 달 만에 하나님 품으로 가셨단다. 이런 청천벽력이 어디 있을까?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서 이역만리 아프리카까지 왔는데, 한 달 만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데려가신 것이다.

보통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남은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지 싶다. 할머니도 처음엔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돌아올까 생각하셨었는데, 거기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서 그 자리를 뜰 수 없으셨단다.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찌꺼기를 찾아 먹고, 빵 한 조각에 그렇게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떠날 수가 없으셨단다. 며느리도 같은 마음이었단다. 할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을 하나님께 보내고 나서, 슬픔을 힘겹게 이겨내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부르셨으니, 이제 아들이 하려던 일을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선교훈련도 받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릅니다. 필요한 건강과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아들이 하려던 일을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때 할머니 연세가 육십을 갓 넘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며느리와 함께 둘이서 15년 동안 아프리카의 빈민가에서 선교를 계속 해오셨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손을 꼭 잡으시고, 손자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신다. “우리 손자를 위해서 기도 좀 해주세요. 손자가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선교하러 온 자기 아비를 지켜주지 못한 하나님은 믿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우리 손자를 위해서 기도 좀 해주세요” 천사 같은 할머니 얼굴,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토록 평안해 보였던 할머니도 마음 속에는 아픔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은 처음 아프리카 가실 때 나이, 육십 초반의 모습이셨다. 온유함과 평안함으로 가득하셨다. 할머니는 온유하셨지만, 누구보다도 강하셨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