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을 향하는 삶(히 11:13-16)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본향을 향하는 삶(히 11:13-16)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한국에서 명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도로에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차량의 행렬입니다. 오죽하면 고향 가는 것을 귀성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참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해마다 고향을 찾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고향에 가면, 정든 부모님과 그리운 이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고, 또한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따뜻함과 풍성한 나눔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향을 찾는 가장 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거기에 나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갈 때 거기에서 안식을 누리고, 내가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어들은 보통 강 상류에서 부화되어서 먼 바다로 나갔다가는 매년마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 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에 이릅니다. 돌아오는 여정에는 사방에 천적들이 있고 거센 물살이 그들을 맞이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저함이 없이 자기들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영혼의 본향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이 육신이 태어난 곳인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도 영혼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해서 본향을 향해 가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몇 가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이며 이방인입니다.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30년 넘게 하신 한 목사님이 처음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 생각하기를 “이 곳은 나의 제 2의 고향이 될 것이다” 다짐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태어난 고향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하면 할수록, 주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들어야 하는 생각은 ‘이 땅은 내가 영원히 살 곳은 아니구나’는 생각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원조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100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한 곳에서 100년 정도 살면, 그곳 거주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오래 살았던 가나안 땅에서 자기는 나그네일 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족속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라고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무려 100년 가까이 살고 번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외국에 살면서 그곳 영주권을 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 영주권은 우리 인생을 놓고 볼 때 진정한 영주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이 땅에 살 수 없습니다. 기억할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다 나그네요 이방인인 것입니다. 영주권을 아무리 받아도,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는 우리가 늘 나그네요 이방인인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수십 년을 살고 그 땅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음에도 “나는 나그네요 이방인입니다” 라고 말한 이유가 14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들임을 나타냄이라(히11:14)”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들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늘 본향을 찾는 자였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 땅의 본향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히 11:15)”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찾던 본향이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16절에 진짜 본향이 나옵니다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아브라함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 바로 천국을 사모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의 아버님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 분이 원래 신앙이 없으시다가 병을 얻으시면서 딸을 통해 복음을 듣고 믿음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분이 몸이 아프고 약해지니까,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고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나중에 암이 너무 진전되어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서 심방을 했는데, 그 때 이분이 가장 은혜를 받고 기뻐한 말씀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그 분은 천국이 왜 그렇게 좋고 기뻤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나그네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보며 제가 깨달을 교훈은 “내가 오늘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야말로 큰 축복인 것입니다. 

3. 천국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있다 가는 나그네요, 본향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곧 ‘이 땅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 나그네로 잠시 왔다 가지만, 그럼에도 이 땅에서의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그네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영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땅에서 다음과 같이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기도문 중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천국이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천국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장차 가야 할 곳이기 전에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곳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천국을 이루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천국은 죽어야 갑니다. 주일학교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천국은 어떻게 갈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원한 대답은 “예수님을 믿어야지요?”입니다. 그 때 다섯 살짜리 아이가 말했습니다. “먼저 죽어야죠.” 천국에 가려면 당연히 예수님을 믿고 나의 구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나도 죽는 것입니다. 죽어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요컨대 천국은 죽어야 갑니다. 날마다 나의 죄된 자아가 죽을 때 비로소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