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진보가 나타나게 하라(딤전 4:6-16)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너의 진보가 나타나게 하라(딤전 4:6-16)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배웠던 교수님 중에 노만 라이트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가정 상담학에서 아주 유명하시고 많은 책을 저술하신 분입니다. 그에게는 발달 장애인 매튜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교수님 부부가 아이에게 많이 해 준 것이 허그였습니다. 매일 애정 어린 허그를 해주었는데, 아이는 한번도 부모를 같이 안아주는 적이 없는 일방적인 허그였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15살이 되던 어느 날, 놀라운 진전이 나타났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리 허그를 해 주어도 반응이 없던 아이가 자기 팔을 뻗어서 부모님을 같이 안아주는 것입니다. 보통 가정에서 이것은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노만 교수 부부에게는 그 아이가 보여준 이 작은 진전이 온 세상을 얻은 것과 맘먹는 감동이었다는 것입니다.

진보라는 말은 뭔가가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진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진보는 아무리 적은 진보라도 우리 삶에 큰 소망과 행복을 줍니다. 더 나아가, 진전이 있고 진보가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에서 사택으로 가는 길이 시멘트 길인데 시멘트 사이로 풀이 자랍니다.그 척박한 시멘트 사이를 뚫고 풀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아무리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이라도 자랍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진전과 진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 구절은 15절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개역한글에 보면 너의 성숙함을 나타나게 하라가 아니라, 너의 진보가 나타나게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도 보면 진보를 뜻하는 progress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함은 진보를 나타나게 하라는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서 진보를 가져와야 하는지 몇 가지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경건에서 진보를 나타내라.

경건을 정의하자면,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를 믿고,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을 쉽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경건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범 선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김재범 선수는 올림픽 출전 당시 온 몸이 부상이 심해서 표현하기를 만신창이였다고 합니다. 왼쪽 어깨는 탈골되어 쓸 수 없었고, 왼쪽 무릎 인대, 팔꿈치 인대, 손가락 인대까지 파열되어서 장애 6등급을 받았습니다. 용인대 이원희 교수가 “이런 몸으로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과학의 힘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김재범 선수가 당당히 금매달을 땄을 때, 기자가 그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당당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대회 출전은 선교이고 대회에 임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다시 말해 이 선수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예배가 아니고 대회에 나가서 경기들을 치룰 때마다 그 시합들을 예배로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시합이 예배가 되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시합을 하나님 앞에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세로 임하니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이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김재범 선수는 당당히 고백하며 “이것은 주님의 힘이 아니었으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입니다”고 간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도 단지 성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정에서 가사 일을 하는 것도 주부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예배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 16:8)”



2. 삶에서 진보를 나타내라.

오늘날 기독교 가정에서 경건한 자녀양육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삶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녀들이 부모님의 훈계나 꾸중을 들을 때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오히려 강한 거부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유는 바로 부모의 삶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말씀하시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하는 이야기가 “엄마 아빠도 그렇게 못 살 잖아요?”고 반문합니다. 이 말은 부모님들이 말하는 것만큼 삶의 진보가 없다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높은 지식이 있어도 삶의 열매가 없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아는 지식이 적어도, 내가 말한 만큼만 살면 그보다 더 강력한 자녀교육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진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면, 백 마디 말보다 기도생활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강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젊은 목사인 디모데도 말과 행실로 믿는 자들의 본이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삶의 진보를 보일 때, 참된 리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활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일꾼 됨(사명)에서 진보를 나타내라.

마지막으로 본문 말씀은, 우리 삶의 진보가 영적인 차원에서 시작하지만 삶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13절에 보니까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삶 가운데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된 것에 머물지 말고 더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미국의 가장 뛰어난 야구 투수가 누군가 하면 클레이튼 커쇼입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결국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2011년 다승, 방어율, 탈삼진 1위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미국 야구를 대표하는 유명한 스타가 됩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이 커쇼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커쇼는 감리교회 교인으로 신실한 신앙인입니다. 커쇼는 고등학교 때 아프리카의 실상을 접하고 마음에 큰 부담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곧바로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선교를 갑니다. 이 부부가 잠비아에 가서 에이즈가 걸린 한 소녀를 만났는데, 커쇼 부인의 고백이 “그 아이의 손을 처음 잡는 순간 우리 삶의 모든 게 변화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의 삶을 위해서 우리 인생 전체를 부르셨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소망(Hope)이라고 부르고 후원을 시작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후원만 가지고는 안 되고 아이가 거할 집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커쇼 부부가 결정하기를, 커쇼가 삼진을 할 때마다 이 아이의 집을 짓는데 기부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해에 커쇼가 가장 많은 탈삼진을 하면서 시즌 최고의 투수가 됩니다. 그리고 커쇼의 후원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게 되고 결국 고아원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명에 진보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이 놀랍도록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신앙이 되어야겠습니까? 경건에서, 삶에서, 사명에서 진보가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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