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89) - 사람과 짐승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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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침 묵상(89) - 사람과 짐승의 차이

정원교회 0 3085

의학에서 가장 기초가 되면서도 중요한 과목이 인체해부학이다. 인간의 신체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인체해부학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인체해부학을 배우기 전에 먼저 동물해부학을 배운다. 동물의 구조를 알아야, 인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인간이 동물과 어떻게 다른 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짐승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 어느 분이 짐승에게도 혼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당연히 없다. 그런데 전도서 3장 21절에 보면, 짐승에도 혼이 있는 것처럼 나와 있다.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먼저 ‘생물’들과 ‘사람’의 창조 이야기를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창세기 1장 20절과 24절에는 하나님께서 물과 땅의 ‘생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생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페쉬 하야’다. 같은 단어가 사람에게도 적용이 된다. 창세기 2장 7절에 나오는 ‘생령’도 히브리어로는 ‘생물’과 같은 ‘네페쉬 하야’다. ‘네페쉬’는 ‘숨쉬는 존재’, ‘생명’, ‘영혼’이라는 뜻이고, ‘하야’는 ‘살아있는’이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나 ‘생물’이나 모두 살아서 숨쉬는 존재라는 의미에서는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생물’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창세기 2장 7절을 다시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서 ‘흙’은 티끌, 먼지라는 뜻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티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티끌에 불과한 사람이 ‘생령’이 된 것이다. 영어성경들은 ‘생물’은 ‘living creatures’나 ‘living things’로, ‘생령’은 ‘living soul’이나 ‘living being’으로 번역하고 있다. 생물은 ‘living thing’이지만, 인간은 ‘living being’인 것이다. 생물은 단지 ‘숨쉬는, 살아있는 피조물’이지만, 인간은 ‘영혼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불멸의 존재, 즉 ‘생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서 3장 21절에 나오는 인생들의 혼’은 ‘영혼’을 말하고, ‘짐승의 혼’은 단순히 ‘숨’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도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육신의 죽음 후에 사람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호흡은 육신과 함께 땅에 묻힌다. 즉 짐승들은 이 세상 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만, 사람에게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 불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과 짐승의 근본적인 차이다.

그러면 “짐승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인간답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셈이다. 이 세상이 삶의 전부인양 사는 것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짐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영혼이 있는 존재로서 육신의 삶 이후의 세계를 바라보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혼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 즉 ‘생령’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육신의 죽음 너머에 영원한 세계가 있는 존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창세기 1장 25절과 26절에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눈에 보이는 형상이 있는 분이 아니므로, 하나님처럼 머리와 눈과 코와 입과 몸과 손과 발을 가진 모양으로 빚으셨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어로는 ‘image of God’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짐승과는 달리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image of God’,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의로움과 거룩함의 상태,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는 상태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 그 결과 의와 거룩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진 상태가 죄의 상태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죄의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회복이 되는데,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모습인 의와 거룩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1절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또 에베소서 4장 24절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에서 짐승과는 다르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인간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형상이 깨진 상태로 있는 사람도 있다. 전자가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라면, 후자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아니, 짐승보다 더 가련한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짐승과 달리 죽음 이후에 영생과 영벌이라는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의로움과 거룩함이라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존재’,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난 ‘존재’, 즉 ‘living being’(생령)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있을 때, 비로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주위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로 나타난다. 삶 가운데 사랑이라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 믿음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요한1서 4장 20절).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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