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91) - 포도나무 가지,,,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91) - 포도나무 가지,,,

정원교회 0 8268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살기가 쉽지 않다. 수시로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으면,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된다. 말씀의 거울이라고 말하면 너무 광범위하고, 좀 막연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할 때, 먼저 주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 좋겠다. 어떤 모습이 보이나?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는 강한 자존심이 보이지는 않는지,,
 
신앙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고, 약한 자가 강한 자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실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다. 자신이 아직 너무 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쉽게 남을 비판하고, 쉽게 상처를 입는다. 이러한 자존심이야말로 신앙의 가장 큰 적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 우리의 주님께서는 발가벗은 채 십자가에 달리셨다.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의 손에 농락 당하시고, 희롱 당하시며 십자가에 달리셨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존엄성도 내려놓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런데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조차 내려놓지 못한다. 오호라, 곤고한 자들이여~~

우리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내가 죽은 그 자리에, 자존심이 어디 있나,,, 자존심이 없는 곳에는, 자신을 높일 자기도 없고, 남에게 상처 받는 자기도 있을 자리가 없다. 그런데 이 자존심이란 놈이 그렇게 쉽사리 죽질 않는다.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질 않는다. 예수를 믿는 자가 된다는 것은 이 놈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의 자리에 앉으시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 믿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려는 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한두 번도 아니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다. 십자가는 자기기 부인되는 자리다. 강한 내가 죽는 자리다. 나의 자존심이 철저하게 부서지는 자리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날마다 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옛 자아, 자존심이 우리 안에 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와이타케레 산으로 트램핑을 자주 갔었다. 산에 오르다 보면 곳곳에 카우리 나무가 있다. 카우리 나무는 참 잘나고 멋진 나무다. 나무 중에 나무라 할 만하다. 육질이 가장 단단한 나무다. 그 단단한 나무가 좌로나 우로나 조금도 휘어짐이 없이 하늘을 향해 똑바로 자라나간다. 이 카우리 나무는 어지간해서는 쓰러지지 않는다. 보통 나무들은 넝쿨들이 휘감고, 이끼가 나무를 덮으면, 양분을 다 빼앗겨서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런데 카우리 나무는 아무리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쓰러지는 법이 없다. 자신을 휘감고 있는 넝쿨들을 다 끌고 꼿꼿하게 하늘로 솟아올라간다.

뉴질랜드의 카우리 나무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무 중 하나일 것이다. 카우리 나무는 마천루처럼,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있는 내 안에 살아있는 강한 ‘나’다. 이 놈은 너무 강해서 결코 쓰러지는 법이 없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비유한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 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겔 15: 2-4a)

포도나무는 나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볼 품 없는 나무다. 카우리나 백향목처럼 고급건축자재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니고, 리무처럼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나무도 아니다. 숲 속의 수 많은 나무들 가운데서 포도나무가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포도나무나 그 가지는 가늘고 꼬불꼬불해서 쓸 모가 전혀 없다. 아무 것도 제조할 수 없고, 심지어 못도 만들 수 없다. 불에 던져져 땔감으로나 쓸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땔감으로도 별 볼 일 없는 게 포도나무 가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정체성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는 가장 가치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자인지를 아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자라기 시작하고, 성숙해져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 5-6)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 포도라는 열매를 맺을 때만 가치가 있다. 그밖에는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의 운명이다. 포도나무이신 주님도 세상에서는 버림 받은 돌에 불과하다. 포도나무나 버려진 돌이나, 모두 세상의 집을 짓는 데는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포도나무 가지,,, 그러나 주님 안에서 그 가지는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가지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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