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 사람, 비전의 교회(행 16:6-10)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비전의 사람, 비전의 교회(행 16:6-10)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비전(vision)이란 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도 바라는 게 없는 사람들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같은 입장인데 어떤 사람들은 현실에 잡혀 삽니다. 이보다 좀 더 심한 사람들은 과거에 잡혀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현실, 과거에 파묻히지 않고 미래를 바랍니다. 더 나은 미래와 내 삶이 잘 되어 나갈 것을 바라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이 보면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은 바라는 것대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 비전을 좀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망과 비전은 다릅니다. 전망이란 것은 이것저것 다 따지고 난 후에 비로소 바라는 것이고 오늘 우리가 말하는 성경적 비전이라는 것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믿음의 비전입니다.

저는 원래 일반대학을 나와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막 들어가서 교육전도사 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이제 시작했으니, 당시에는 너무 부족하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받아 주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교회에 지원했지만 넣는 족족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제 형님이 서울 광림교회를 지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하도 기가 막혀서 웃었습니다. 이제 신학을 시작하고 경력도 없는데, 큰 교회에서 어떻게 나를 받아 주겠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6개월 전에 라디오에서 김선도 목사님 설교를 듣게 된 것입니다. 처음으로 김선도 목사님의 육성 설교를 들었는데 마음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바라기를 “내가 언젠가 이 김선도 목사님과 함께 일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그냥 바란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무모하게도 광림교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제 이력서는 처음부터 제껴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력서를 내고 연락이 안 오니까 낙심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상하게 저를 밀어 붙이셨습니다. 교회에 일단 전화를 하고 찾아가게 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아주 황당해 했습니다. 서류에서 떨어졌으면 안 되는 걸로 알아야 하는데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교회에서 오래 계셨던 한 전도사님과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가 아주 잘 됐고, 그 전도사님이 나중에 교육목사님에게 강력하게 추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김선도 목사님을 만나 면접을 치뤘습니다. 면접하는 내내 김선도 목사님마저도 저를 보시면서 걱정스런 눈빛으로 교육목사님에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었습니다. 제가 그 후로 광림교회에서 십여년을 섬겼고,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일은 하나님이 이루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일은 이루어지고 맙니다. 비전을 가지면 그 비전이 내 삶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이끄시고 축복하실 때 가장 먼저 비전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에 대해서 몇 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인생이 되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바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와 세계 역사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본문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의 원래 전도계획은 아시아를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시아란 지금의 터키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 터키 땅(아시아)를 전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바울을 팍팍 밀어주셔야 하는데 6절에 보면 황당한 일이 생깁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하려는 것을 사단이 막은 게 아니라, 성령이 막은 것입니다. 바울은 낙심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니 아시아를 전도하려는 게 왜 자꾸 막히는가?’ 그때 하나님이 바울에게 환상 중에 말씀하십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행16:9)” 하나님이 바울에게 환상, 즉 비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아시아를 계획했지만, 하나님의 비전은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자기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갔을 때 바울은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선교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비전에 민감하라.
비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비전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비전을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신문에 나오는 띠에 따른 자기 운세도 알고 싶어 하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비전에 있어서 모두에게 해당되는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전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찾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전에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는 죽음의 위기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성도들과 작별할 때, 성도들이 울면서 말립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거기서 큰일을 당할지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가면 죽습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볼 수 가 없습니다”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가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나아갔습니다.

바울은 아무리 자기가 노력하고 계획하고 애썼어도 주님의 비전이 아니면, 두말없이 순종하고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이라면, 죽음이 기다려도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비전에 순종하라.
미국 역사에 해충 재해로 남부 일대의 목화가 전멸한 일이 있었습니다. 1895년 바구미가 번져 앨라배마부터 텍사스까지 목화지대가 전멸해버린 것입니다. 해충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밭으로 농부들이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집니다. 그때 조지 워싱턴 커버라는 농학박사가 이 폐허 속에서 연구를 시작해서 대안 작물로 땅콩을 발견해서 그것을 소개하게 됩니다. 땅콩은 뿌리 식물이기 때문에 해충의 피해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이 세계 최대의 땅콩 생산지가 되어서 농가들이 살아나고 큰 번영을 맛봅니다.

비전은 어려운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기적이 되려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순종입니다. 방금 앞서 얘기한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가 중간에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땅콩이 너무 잘 되어서 너도 나도 땅콩을 심게 되자 과잉생산이 되어 땅콩이 썩게 될 지경에 이르른 것입니다. 농민들은 땅콩을 심으라고 권장한 커버 박사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커버 박사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실험실로 들어가 땅콩을 통해 300여 가지에 이르는 제품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들과 고통과 인생의 장애물을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비전을 주십니다. 그런데 비전만 주시는 게 아닙니다. 비전을 주실 때 반드시 비전에 대한 순종도 요구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비전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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