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요 5:1-9)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요 5:1-9)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지난 주간 뉴스를 보니까 서울 잠실의 석촌 호수에 한 네덜란드 예술가가 초대형 오리 인형을 설치한 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무게가 1톤이고 높이 16.5m에 이르는 이 초대형 오리 인형은 일명 ‘러버덕’이란 것인데 네덜란드 예술가가 이 러버덕을 띄운 이유가 한국에 평화와 행복의 메시지 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런 걸 보면, 현대인들이 얼마나 평화와 행복을 갈구하는지 모릅니다. 오리 인형을 통해서라도 평화를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나옵니다. 이 연못은 많은 병자들이 모여드는 장소였습니다. 그 이유가 가끔 물이 움직일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천사가 내려온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천사가 내려올 때 물에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지 나을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런 전설이 소문이 나서 수많은 병자들이 이 연못가에 모여들어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설만큼 이 연못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더 희한한 것은, 이렇게 신통치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이 연못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5절에 오늘 주인공인 한 병자가 나오는데 38년 동안을 한 자리에 누워서 그 물이 움직이길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과 그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많은 베데스다 연못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이란 인위적인 소문과 신화에 현혹이 되어서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는 아무런 변화도, 치유도, 역사도 바라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병자는 3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38년이란 시간만 지났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만든 신화를 믿었고, 헛된 전설만을 믿었기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소유자일까요?

1. 거룩한 열망을 가지라.

예수님께서 38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병자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입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은 오늘 이 병자의 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질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7절에 병자의 대답이 나오는데, “예 제가 낫고 싶습니다.”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이 대답이 나와야 하지만 이 대답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 병자는 병에서 낫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38년 동안이나 고침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까? 이 병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낫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자기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안에, 낫고자 하는 열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내 안에 낫고자 하는 열망이 없으면, 내 안에 주님에 대한 열망이 없으면 거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자리를 10년, 20년 지킨다고 해도 내가 낫고자 하는 열망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저희 교회는 호렙산 새벽 기도회 가운데 많은 교우들이 나오셔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도 보면, 기도의 열망이 느껴지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많이 힘드시죠?” 물어보면 오히려 “이상하게 기도가 감당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갖고 나아가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힘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마음 속에 거룩한 열망, 주님을 향한 열망을 회복하기를 축원합니다.



2. 부정적인 삶의 자세를 버리라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가 중요한데 그 중의 하나가 몸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몸의 자세보다 훨씬 더 우리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신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마음의 자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버려야 할 세 가지의 부정적인 자세가 나옵니다.

1) “아무리 노력한들 소용없어”라는 자세입니다.
“그거 해도 별 수 없어요” 우리 믿음을 무력하게 하는 부정적인 자세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의 질문에 아예 대답이 없습니다. “예수님, 제가 여기 이렇게 38년동안 있었습니다. 안 해 본 것 있겠습니까? 다 해 봤죠. 해도 별 수 없습니다. 소용없습니다” 이게 바로 이 병자의 무언의 답 속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부정적인 자세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눈앞에 있는 방법에 몰두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에 이 병자의 대답이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고 답합니다. 이 병자는 자신의 병이 낫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에 몰두합니다. 눈앞에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물에 들어가야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주님은 과정을 뛰어넘으셔서 곧바로 해결책을 주시는 것입니다.

3) 남을 원망하는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이 병자 얘기가 무엇입니까?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내가 38년간 이렇게 고침을 못 받은 것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정신적인 병폐가 바로 남을 원망하는 자세입니다. 과거 카톨릭에서 좋은 운동을 했습니다. “내 탓입니다”라는 운동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남의 탓을 하면, 본문의 38년 병자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부정적 자세에 휩싸인 이 병자에게 주신 예수님의 처방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5:8)”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믿음 없이 들으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아마 저라면 “예수님, 아니 제가 이걸 들고 걸을 수 있었다면 38년간을 여기 있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병자는 예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믿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가진 자에게 말씀을 듣고 일어나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말씀을 들으면 역사가 나타나는데 우리 영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혼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깁니다. 영적으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일어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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