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골로새서 4:7-13)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골로새서 4:7-13)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유아들이 좋아하는 동화 중에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돼지 삼형제가 각각 집을 짓고 살게 됩니다. 첫째 돼지는 손쉽게 짚을 가지고 집을 지었지만 늑대가 찾아와 바람으로 그 집을 날려버립니다. 둘째 돼지는 나뭇가지를 가지고 집을 지었지만 늑대는 그 집마저도 바람을 불어서 날려 버립니다. 한편 셋째 돼지는 어렵사리 벽돌로 집을 지었는데 늑대가 찾아 왔을 때, 이 벽돌로 지은 집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날아가기는커녕 도리어 늑대가 굴뚝으로 들어오다가 잡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돼지 삼형제의 생사를 가른 결정적 계기가 무엇입니까? ‘무엇으로 집을 지었느냐?’에 따라서 삶과 죽음이 갈린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들을 보면,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지어진 교회들을 많이 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참 좋아졌고 때로는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영적인 교회들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어려웠어도 복음만으로 승부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교회가 거룩하고 견고하게 세웠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 마음속에 교회는 무너질 대로 무너졌고 교회가 주는 거룩함과 능력을 참 많이 상실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내용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의 마지막에서 여러 사람을 소개합니다. 7절에 두기고, 9절에 오네시모, 10절에 아리스다고, 바나바, 마가, 11절에 유스도, 12절에 에바브라가 나옵니다. 이들은 바울을 도와 각처에 교회들을 견고히 세웠던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의 놀라운 부흥은 바울과 함께 동역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워진 것입니다.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는 과연 어떤 이들로 세워져 가는지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1.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일꾼이 교회를 세웁니다.
오늘 7절과 9절을 보면 바울이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소개합니다. 먼저 두기고에 대해서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골4:7)”라고 소개하며, 오네시모에 대해서는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골4:9)”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에 공통적인 것은 둘 다 신실한 동시에 사랑을 받는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신실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7절 후반의 말씀처럼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할 때, 많은 고난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런 괴로움과 고통을 당할 때 감사하게도, 바울을 떠나지 않고 함께 그 종된 고난을 당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두기고와 오네시모였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들이 세워지기까지 환난과 핍박이 찾아왔을 때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바울과 함께 종이 되고, 함께 고난을 받은 이들이었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마지막 학기가 되어 논문을 써야 하는데 교회 일은 바쁘고, 시간은 없고 답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 때 공부보다 목회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휴학하려고 학교에 갔는데 우연히 한 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휴학한다고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휴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때 제 마음에 하나님이 인도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휴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교회 일이 걱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함께 목회하던 전도사님이 저에게 와서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혹 논문 때문에 혹 못하는 일이 있으면 대신 해 주겠다고 저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 전도사님의 말이 제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힘을 얻고 논문도 목회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종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누가 교회를 세웁니까? 주의 일을 감당할 때 함께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고 함께 종이 된 자들입니다.



2.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 교회를 세웁니다.
에머슨 파스딕이라는 설교가가 미국인들이 교회에 나가는 4가지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생활 습성이나 관습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고, 둘째는,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며, 셋째로, 교회에 나가서 활동하면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기에 교회에 나가며, 넷째로, 일시적인 위안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이들로서는 교회가 숫적으로 채워질 수는 있겠지만 교회가 영적으로 세워질 수는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취미나 인간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뜨거운 임재를 경험하였고, 나아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십자가와 부활을 외친 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역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적당히 예배하고 적당히 기도하고 적당히 취미생활로 믿는 이름만의 크리스천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성령으로, 기도로, 눈물로, 헌신으로 역사하는 자들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서울 광림교회 정문에 가면 비나오나 눈이 오나 일 년 365일을 전도하시는 한 권사님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명에게 전도를 합니다. 이분이 무슨 탁월한 능력이나 언변이 있는 분이 아닙니다. 전도 방법도 특별한 게 없습니다. 옆에서 보면 ‘저렇게 해서 전도가 되겠나?’ 싶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분을 찾아가서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 때 그분의 말씀이 “목사님, 제가 원래는 하나님도 모르고 인생의 저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고 보니까 이제는 더 바라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분의 전도로 오는 새신자가 일 년에 이백 명, 삼백 명에 이릅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들이 교회를 세웁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번 호렙산 새벽 기도회가 작년보다 훨씬 더 모일뿐 아니라 큰 은혜가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렇게 은혜가 넘치는 것은 모두가 수고의 결과입니다. 기도회를 위해서 새벽에 남선교회 회원들은 일찍 나와 주차 안내로 헌신합니다. 찬양을 위해 여러 사람이 매일 수고합니다. 매 주일 점심을 위한 애찬을 위한 수고도 있습니다. 국을 푹 우려내기 위해서 여선교회 회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봉사를 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지, 수고의 덕을 본 사람들은 그 수고함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주일 점심을 편안하게 앉아 식사하는 것도 학생들이 테이블을 펴는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대가 매주 자리를 지키는 것도 큰 수고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좋은 것들은 하나같이 다 수고의 결과입니다. 제단 장식, 예배 안내, 새신자 안내, 중보기도, 사회 봉사부, 재정부, 관리부, 문화부, 교회학교, 문화센터, 기획위원회, 교회 소식지, 찬양단, 각 교구장, 남녀선교회장, 속장, 속회 인도자 등 다 수고가 넘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에바브라를 칭찬하는데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골4:13)” 고 합니다. 교회는 이름도 없이 빚도 없이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교회를 세우실 때 혼자 세우시지 않고 성도들을 부릅니다. 신실한 일꾼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역사하는 자들,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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