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96) - 성숙한 그리스도인,,,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96) - 성숙한 그리스도인,,,

정원교회 0 8914

세상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의견차이를 보이기도 하고, 서로 다툴 때도 있다. 세상은 그렇다 치고,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도 교인들 간에 사소한 일로 다투고, 마음에 상처를 입어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상처는 핑계고, 실은 목회자나 교회에 실망해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성숙한 목회자도 많지 않고, 성숙한 성도도 보기 힘들다.

교회도, 목회자도, 성도도,, 모두 미성숙한 것은 아닐까? 신앙인으로서 성숙해진다는 것, 성숙한 그리스돈인이 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예수 처음 믿었을 때는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을 때 기뻐 뛰듯이, 기쁨이 넘치고, 소경이 눈을 뜨게 된 것처럼, 세상이 달라 보인다. 이때는 기도 응답도 잘 받고, 손뼉치고 기뻐 찬양하며,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겁다. 교회생활도 재미있고, 세상 살면서도 신이 난다. 천국도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인생이 신바람이 난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믿음이 어느 정도 자라면, 기쁨이 사라지고, 깊은 고뇌에 빠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백처럼,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룻 1:20) 나오미는 기쁨이란 뜻이고, 마라는 괴로움이란 뜻이다. 나오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때가 반드시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다듬어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지치기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신다. 인생 중에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깨달아가게 된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인 것 같지만, 실제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배워가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전능자의 손이 자신의 삶 깊숙이 들어와 만지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자기 옆에 아주 가까이 뻗쳐있는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삶의 주권자이시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순간,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무능한 자신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리면서, 자기 자신을 보는 눈도 함께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전능하시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부르짖으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눈 먼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내면의 성숙이 없이, 외향적으로만 자라나는,, 기형적 그리스도인들이다. 신앙인들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내면의 성숙이 없는 기형적 성장,, 혹시 우리의 자화상은 아닐까,,,

내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자기 안에서 왕 노릇하며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아담의 모습, 자신의 옛 사람을 보게 될 때, 신앙은 비로서 내적으로 여물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직도 죄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하게 될 대, 신앙은 비로소 성숙해지기 시작한다.

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내 안에 모셔야 할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하나님이 되고, 내 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바로 자기주권을 포기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는 제가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왕이십니다. 이제는 제가 제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저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저를 다스려주십시오. 나의 주, 나의 예수님, 저를 다스려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것이요, 주의 것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제가 저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옛 습관들에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아직도 자신의 삶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버티고 서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드는 게 회의다,,, 내가 정말 거듭난 게 맞나,,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전에는 죄에 대해서 별로 감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죄에 대해서 민감해진다.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도덕적 범죄를 말하는 게 물론 아니다. 사실 이런 도적적 감각조차도 없이 사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긴 하지만,,, 여전히 자기 안에 강한 성처럼 자리잡고 자신을 사로잡고 다스리고 있는 막강한 죄의 세력,,, 바로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옛 사람, 죄 가운데 살던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 되셔서 사시는 것,,, 이것이 거듭남의 내용이다. 성령 안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 이것이 영적 세례요, 거듭남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이 있을 때, 즉 거듭난 자기와 아직 거듭나지 않은 자기가 동거함을 보게 될 때, 신앙은 내적으로 농익는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면서, 끊임없이 십자가의 자리로 나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눅 9:23에서 말씀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완전한 자가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아는 자이며,,, 그러기에 날마다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자들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