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97) - 아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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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병의 아침 묵상(97) - 아픔 없는 사랑, 사랑 없는 아픔

정원교회 0 2740

11월이면 햇살 아름다운 봄이련만 바람이 세차게 분다. 봄바람 같지 않은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바람이 아프게 마음에 불어온다. 아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나도 아프다. 주어진 한 평생 살다 가는 인생인데, 어찌 그렇게도 아파들 하는지,, 누군들 아프고 싶어 아파하겠냐만,, 삶이 아프다. 아픈 인생들이 모인 교회는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는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아픈 사람들이 서로 아픈 마음에 상처를 준다,,, 그래서 목회자는 더 아파한다. 자신의 아픔에,, 성도들의 아픔에,, 교회의 아픔까지,, 목회자는 아파한다. 그리고 그 아픔들을 겪으면서 목회자도, 성도들도, 교회도 속 알맹이가 영글어가며 성숙해지는 것이리라.

그렇다! 아픔은 성숙해지는 성장통이다,,, 그러나,,, 아픔은 가시가 되어 여전히 마음에 깊숙이 박혀온다. 아픔이 아픔을 더 아프게 한다. 아픔을 모르기에 더 아프다,, 나는 아픔의 깊이를 모른다.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아픔이 얼마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 그 아픔이,, 진정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피폐시키고, 황량하게 만들고 있는지,,, 나는 아픔을 알지만, 그 아픔의 깊이를 모른다.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아파하게 되는 날, 나는 성숙한 목회자가 되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피 토하며 부르짖는 내 안에,,, 그 사랑이 없음을 나는 안다,,, 아픔의 깊이가 없는 만큼, 나의 사랑도 깊이가 없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더,, 아프다. 아픈 바람이 폐부 깊숙이까지,, 심하게 불어온다.

십자가,,, 십자가에 부는 바람은 얼마나 아픈 바람이었을까,,, 창세이래 우주에서 가장 혹독한 아픔의 바람이 십자가에 세차게 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바람은 아픈 만큼, 아니 아픔보다 더 큰 사랑의 바람임을 안다. 아픔이 깊은 만큼, 사랑도 깊다. 그렇기에 십자가의 사랑은 모든 아픔을 담아내고, 이겨낸다. 십자가는 인생들의 모든 아픔을 수용하고, 온갖 아픔들이 정복되는 자리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 삶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다. 깊고 깊은 하나님의 아픔과,, 그 아픔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아픔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다.

아픔은 사랑의 자리로 나가는 길목이다. 사람은 아픈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아픔이 아픔으로만 그친다면,, 그 아픔은 고통일 뿐, 의미 있는 아픔은 아니다. 우리의 아픔은 십자가에서만 의미가 있고, 진정한 아픔이 될 수 있다. 십자가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을 깊은 아픔으로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십자가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십자가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아픔과 사랑이 나의 삶을 신실하게 붙들고 계심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앙이 성숙해지는 자리며, 완성되는 자리인 것이다. 오늘도 주님 달리신 십자가는 세상의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 없이 굳게 서 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크게 흐트러지고 있다. 십자가는 아직도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 있을 뿐,, 나의 마음 속에 십자가가 살아있지 않다. 십자가의 그 아픔과,, 십자가의 그 사랑이,,, 나의 마음 속에 살아있지 않다,,,, 나의 삶 속에 녹아 들어있지 않다,, 그 아픔, 그 사랑,, 그래서 나는 아파한다. 아픔 없는 사랑에 나는 아파한다.

십자가 모르는 그리스도인 없지만, 십자가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또한 어디 있는가,,, 십자가 없는 교회 없지만,, 십자가 있는 교회도 없다. 십자가의 아픔과 사랑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그런 교회가 그립다,,, 지상에서 천상의 것을 찾는 어리석음,,,

우리는 아픔을 말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아파는 하지만, 사랑은 모른다. 십자가의 사랑은 알지만, 십자가의 아픔은 모른다. 아파할 자격조차 없는 지 모른다. 사랑이 없는 아픔,,, 그런 아픔은 없다. 십자가 앞에서 그런 아픔은 없다.

모두가 너무 어리다. 아파하는 사람은 많아도,,,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벼운 사랑은 많아도, 무게 있는 사랑은 없다. 얄팍한 사랑은 많지만, 깊이 있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아픔을 만날 때, 그 사랑의 진실이 드러난다. 아픔을 담아내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에는 십자가가 없다. 공허한 사랑의 외침만 있을 뿐, 십자가의 참 사랑은 없다.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사랑은 자기기만 속에 죽어가고 있다. 거짓된 사랑의 가면을 벗어버리자. 더 이상 사랑을 노래하지 말자. 더 이상 사랑을 말하지 말자. 사랑 없는 우리들이여, 더 이상,, 십자가의 사랑을 욕되게 하지 말자. 십자가의 아픔도,, 십자가의 사랑도,,, 우리는 모른다. 그러기에 아파하는 자는 많아도, 사랑하는 자는 없는 것이다. 아픔의 의미도, 사랑의 의미도,, 우리는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십자가 앞에 나가자. 숙연히 그 앞에 엎드리자. 십자가의 승리를 노래하기 전에, 십자가의 아픔을 알자. 주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눅 9:23). 십자가는 자기가 부인되는 자리다. 아픔 중에 가장 큰 아픔은 자기가 부인되는 아픔이다. 그러나,, 더 큰 아픔은 부인되지 않는 자신으로 인해 겪는 아픔이다.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되지 않는 자신이 고통스럽다,, 그 아픔이 진짜 고통스런 아픔이다. 천상에 서기까지 겪어야 할 아픔이다.

십자가는 자신이 송두리째 뽑혀나가는 자리다. 그 아픔 없이는,, 아픔도 사랑도 말하지 말자.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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