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찬 감사의 샘 근원(엡 1:3-14 )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벅찬 감사의 샘 근원(엡 1:3-14 ) -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이 하루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브로콜리를 넣지 말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부시는 브로콜리를 싫어한다”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이 소문으로 애꿎은 브로콜리 재배 농장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농장주들이 모여서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이들은 거친 항의 대신 편지 한 통과 브로콜리 한 트럭을 대통령에 선사했습니다. “대통령님, 이것은 미국인들이 즐겨 먹는 채소입니다. 또한 단백질과 철분이 많아 몸에 이롭습니다. 이것을 즐겨 드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일이 뉴스로 회자되어 브로콜리가 홍보되고 위기를 모면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결코 공동체를 살리는 방법이 아닙니다.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면 결국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감사는 모두를 살리게 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의 감사의 찬양입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로 말씀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원문에 보면, 3절에서 “찬송하리로다”로 시작된 문장이 14절까지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절에서 14절까지 한 문장이라는 것은 사도바울이 감격한 나머지, 거침없이 쉬지 않고, 감사와 감격을 써내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는 이 바울의 감사를 마치 계속 떨어지는 폭포수에 비유하고, 어떤 성경학자는 산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가 점점 부피가 커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사실 바울은 감사와 감격이 나올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편지를 쓴 곳은 고통스러운 감옥 안입니다. 감사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3절에 나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1:3)”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경험하고 누리고 있는 놀라운 복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합니다. 이 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것을 누리고 보니까 감옥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소유하길 바랍니다. 오늘은 바울이 소개한 세 가지 신령한 복을 가지고 벅찬 감사의 샘 근원은 무엇인가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이 나를 택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입니다.
최근에 한 야구 선수가 나이가 40이 되고, 실력이 떨어져 결국 프로야구팀에서 방출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씁쓸하고 낙심이 됩니까? 그런데 유명한 한 프로야구 감독이 그를 택했습니다. 그러니 이 선수가 황송하고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그 감독님이 자기를 부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팀으로 오라고 하니까 지체하지 않고 “예” 하고 응답한 것입니다. 스스로 각오를 다지기를 “어떤 지옥 훈련도 할 것입니다. 젊은 선수들 못지않게 나를 불사를 것입니다.” 왜 이런 각오와 결단이 나옵니까? 내가 택함을 받고 보니까 그게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택함 받은 사람의 감격입니다.

우리에게도 벅찬 감격을 가져다주는 샘 근원이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택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여기에 믿는 자의 가장 큰 벅찬 감격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전이라는 것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실 계획을 먼저 세우신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수 없느니라(요6:44)” 내가 예수님 앞에 나온 것도,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 결과이며 창세전에 택하신 결과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바울은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존재라고 합니다. 이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이 믿는 자의 감사의 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감사와 감격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구속이라는 말은 노예 시장에서 노예나 종을 값을 주고 소유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노예들이 시장에 나오게 되면 값이 매겨집니다. 젊고 건장할수록 비싼 값이 매겨지는데 그 값을 지불하면 노예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선량한 주인이 노예를 불쌍히 여긴 나머지 자유인으로 풀어주는 경우 그걸 속량이라고 합니다. 이 속량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노예를 사야 합니다. 돈을 주던, 물건을 주던 무엇을 주고 그를 사야 합니다. 이 돈이나 물건을 가리켜 속량물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이 구속, 즉 속량에 비유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죄의 종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죄의 종이었다는 것은 죄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속량물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님을 속량물로 주셨습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귀한 것을 준다 해도 외아들을 내어주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을 속량하기 위해서 속량물로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 사랑과 은혜를 소개하기 위해서 바울은 벅찬 마음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라고 찬양한 것입니다.

3. 성령이 내 마음에 오신 은혜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앞에서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나눴다면, 마지막은 성령님의 인치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성령은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동시에 우리 안에 오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순간에 성령이 내 마음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에 한 중년 부인이 눈이 너무 나빠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되고 말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남편이 절망에 빠진 아내 옆에서 격려를 해주고 눈이 되어줍니다. 매일 아내의 출퇴근길을 동행하며 버스 타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남편이 말하기를 서로의 직장이 너무 머니 앞으로는 혼자 출근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섭섭하고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면서 많이 넘어지기도 하면서 혼자 다니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2년, 하루는 버스운전사가 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부인은 복도 많소,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함께 앉아 있어 주고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격려를 해주니 말이요" 이 말을 들은 부인은 2년간 늘 자기 곁에서 떠나지 않은 남편을 생각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도 험한 세상에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 때 눈에 보이진 않지만, 늘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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