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발견하는 마음(눅 1:39-56)-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발견하는 마음(눅 1:39-56)-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일요시사 1 8782

크리스마스 하면 반짝이고 아름답게 장식된 트리,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생각납니다. 또 성경적으로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를 둘러서서 기뻐하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동방박사들과 목자들도 생각이 납니다. 마음이 설레고 행복한 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이를 먹고, 신앙의 연수가 쌓일수록 크리스마스 시즌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회자인 제 경우도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인데도 솔직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왜냐하면, 일 년 목회 결산을 하고 내년도 계획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아들을 낳은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에게 전한 소식은 지상 최대의 기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성탄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지상 최대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한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임신하면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리아는 놀랍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습니다(눅 1:46-47)”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이렇게 기뻐하고 찬양할 때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리아의 마음에서는 찬양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기뻐한 게 아니라 그 마음이 하나님을 기뻐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마리아의 기쁨과 찬양이 필요합니다. 오늘 어떤 마음에 크리스마스의 참된 기쁨이 임하는지 세 가지로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1.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때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임합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소식을 들은 후 친족이자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달려갑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달려간 것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해준 이야기 때문입니다. “네 친족 엘리사벳도 임신하지 못한다 했는데 임신했느니라(눅1:36)” 천사는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을 못했는데 임신을 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간 것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갔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42절에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고 대뜸 하는 이야기가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1:42)”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임신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1:45)”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과 그가 천사를 만나 했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마리아가 무엇을 알았을까요? 바로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앞서서 행하시는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앞서 행하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앞서 행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한 청년이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대학의 신학과정을 마친 후 선교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청년은 너무 기뻐서 당장 옷과 구두를 준비하려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의족을 하게 된 그는, 크게 낙망하여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간다는데 어찌하여 다리를 자르시는 겁니까?" 얼마 동안을 그렇게 낙심해 있던 중, 아프리카로 갈 선교사 모집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마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겠는가?'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는데 합격을 했습니다. 마침내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그만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잡혔는데 다름 아닌 식인종들이었습니다. 식인종들이 빙 둘러싸고는 이 백인을 잡아먹겠다며 축제를 벌입니다. 그 때에 선교사는 의족인 자기의 한쪽 다리를 뚝 떼어서 저들에게 던졌습니다. 고무다리를 받아 든 식인부족이 이것을 먹다가 질겁하고는 신이라고 하면서 모두가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결국 그 일을 계기로 이 부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그 때 ‘자기의 다리 하나가 잘린 이유’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는 마음에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임합니다.


마리아는 47-48절에서 자신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힙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 1:47-48)”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은 비록 내가 비천하지만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 주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혼전임신을 했으니 사람들에게 잡혀 죽지 않을까?’ 생각하거나, 약혼한 요셉이 뭐라고 생각할지 걱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복을 생각하며 미래의 큰 비전을 가진 것입니다. 그랬을 때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모든 상황이 좋을 때, “나는 잘 될 것입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은 죽음 같은 상황에서도 생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마리아의 고백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는 마음에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임합니다.


사실, 믿음 좋은 마리아도 사실 엄청난 두려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본문 50절 말씀을 보니까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는 바로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의 고백이 은혜가 되는 이유는 두려운 마음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오는 목적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4:16)”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올 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인 것입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는 “세계의 수도” 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한 아버지가 가출해 마드리드로 떠난 아들인 '파코'를 찾아 나섭니다. 아버지는 마드리드의 한 신문에 광고를 냅니다. "파코, 화요일 낮 12시에 몬타나 호텔 앞에서 만나자. 모든 것을 용서하마. 사랑한다" 놀라운 사실은 아버지가 약속 장소에 나갔을 때 그곳에는 무려 800여명의 '파코' 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우리 모두는 상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용서와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하고,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1 Comments
NZ광림교회 2014.12.20 13:04  
https://www.youtube.com/watch?v=HKdeFPbI45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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