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요 1:1-14)-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요 1:1-14)-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완전히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조금씩이라도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 닮기 위해서 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1) 나는 과연 예수님을 만났는가? 2)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 들였는가? 3) 지금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날마다 그분과 교제하는가?


이 질문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 25장에 보면, 한 무리가 나오는데, 자기들은 예수님을 잘 믿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대에 섰을 때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믿음을 점검하며,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사셨는가?’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가?’ 세 가지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본문 1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말씀’이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또 다른 ‘위격’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요한이 말하는 말씀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14절에서 궁금증이 풀립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중요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라는 것은 하나님은 한 본질이시지만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이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 위격이 조화롭게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 곧 말씀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까? 인도에 선교를 나갔던 한 선교사가 힌두교 청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여러분,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차마 보실 수 없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때 한 똑똑한 청년이 일어나서 "선교사님, 아니,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인간을 구하는 게 뭐 그렇게 복잡합니까? 그냥 인간들을 불러서 다 구원해주면 되지,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고 복잡합니까?“ 하고 나가버린 것입니다. 청년이 집을 향해 가는데 한 농부가 밭을 갈며 다가오고 있었고, 청년 앞에는 개미떼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 곧 농부가 몰고 있는 쟁기에 의해 천지가 개벽 할 텐데, 개미들은 먹이를 나르는데 정신이 팔린 것입니다. 이때 청년이 개미들을 향해서 소리 쳤습니다. "얘들아!! 피해!!! 그대로 있다가는 다 죽어. 어서 피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굴러도 개미들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 때 청년이 자신도 모르게 "아~!! 내가 개미가 될 수 있다면..." 탄식했습니다. 그 순간에 청년은 깨달았습니다. ‘개미가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가 없는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구나.’ 그 후로 청년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육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설교를 가장 잘 하시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설교 중에 목 놓아 부르짖는 말씀이 “여러분, 제발 이제는 성경에만 줄 긋지 말고, 삶에 밑줄을 그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을 때, 성경에만 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삶에도 밑줄을 그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


4절 보면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빛으로 나타났습니다. 9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고 나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빛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생명을 주기 때문입니다.


빛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이 있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빛이 임했고,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가셨을 때, 죽은 지 사흘 된 나사로가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빛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 된 삶을 산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어주는 삶입니다. 나로 인해서 생명의 역사가 있고, 나로 인해서 공동체가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살고 신앙이 좋아지고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 바로 빛 된 삶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드러내셨다는 말입니다.

빛의 가장 큰 힘은 어둠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특징은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 나쁜 것, 깨끗한 것 더러운 것, 안전한 것 위험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둠이 주는 큰 고통이요 피해입니다. 반면에 빛의 유익은 좋은 것 나쁜 것, 깨끗한 것 더러운 것, 안전한 것 위험한 것이 구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영적인 어둠이 물러간 것처럼, 우리도 빛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빛 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어둠을 물러가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5:8)”



3.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은혜와 진리가 필요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만나는 장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최고로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도 남을 위해서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그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리가 나타난 곳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야만 했을까요?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진리 때문입니다. 또한 죄를 사하기 위해서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진리 때문입니다. 피 흘림만이 죄를 용서받는 길입니다.


보세요. 인간들은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결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은 은혜와 진리가 만나는 곳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절)”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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