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아야 삽니다.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은혜 받아야 삽니다. <마 13:3-8 고후 6:1-2>-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예수 믿는 것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도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수상이 처칠이 1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참호 속에서 웃음을 잃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사색이 된 부하 장교들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웃어라. 그리고 부하들에게 웃음을 가르쳐라, 웃을 줄 모르면 최소한 웃는 척이라도 해라. 만일 웃는 척도 못한다면 그럴 수 있을 때까지 구석에 물러나 있으라!” 이 말은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도 웃을 줄 알아야 그 극한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문제와 고통이 가득할 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삶에 은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물고기는 아무리 힘이 세고 펄펄 뛰어도 물을 떠나면 죽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먼저는 은혜를 맛본 자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남편도 한나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남편의 후처가 속을 뒤집어놓는데,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보세요. 한나는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도 행복하지 않고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한나가 성소에 올라가서 원통함을 다 내어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다가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큰 응답과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까, 그 마음에 괴로움과 분노가 사라진 것입니다. 문제는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은혜가 채워지고 보니까 괴로움과 분함과 원망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사순절 40일 새벽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호렙산 40일 기도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고백하기를, “40일을 기도한 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떤 분은 “저는 새벽잠이 많아서 새벽에 기도할 사람이 아닌데도 하나님이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시는데, 희한하게도 힘든 걸 몰랐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걸 보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야곱은 광야를 지낼 때 하나님께서 영적인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에 사닥다리가 올라가고 거기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야곱의 생애 가운데 처음 경험한 하늘의 은혜였습니다. 야곱이 이 하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까, 놀라운 사실은 광야가 새로워 보이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절망과 슬픔의 장소가 오늘은 하나님의 집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벧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야곱이 경험한 하늘의 은혜가 있을 때, 광야의 삶이 감당되는 것입니다. 


2. 은혜의 삶은 영적인 양식이 좋아야 합니다. 

본문은 씨가 땅에 뿌려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씨는 식물이 자라 자연적으로 뿌려진 씨앗이 아니라 농부가 뿌린 씨앗입니다. 다시 말해 농부가 정성껏 준비한 좋은 씨앗입니다. 마 13장 24절에 보면, 주님은 천국을 정의하기를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좋은 씨앗이 뿌려질 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든, 가정이든, 내 마음이든 천국이 되고 은혜가 충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좋은 영적인 양식이 뿌려져야 합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매 주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좋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설교가 좋은 씨앗, 좋은 영적인 양식일까요? 우리는 보통, 듣기에 좋고 편안한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꼭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설교는 꼭 듣기에 좋은 설교가 아닙니다. 때로는 듣기에 좋지 않은 설교가 좋은 설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음식이 엄선 된 좋은 재료 그 자체에서 맛을 내는 것처럼, 좋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서 은혜가 나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자도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고, 듣는 사람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이란 곳에 모여서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을 들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은 듣기에 딱딱하고 지루합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하나님이 갈급하니까 말씀을 사모하여 그걸 들려달라는 것입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마이크 시설도 없는 곳에서 함께 율법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느 8장 9절에 보면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이 율법을 들을 때 이렇게 은혜 받은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들은 율법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은 것입니다.  

3. 은혜의 삶은 은혜 받는 심령이 건강해야 합니다.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하려면 먼저는 씨가 좋아야 하고, 그 다음은 밭이 좋아야 합니다. 씨가 아무리 좋아도, 길가에 떨어지면 도리가 없습니다. 씨가 아무리 좋아도 돌밭이나 가시밭에 떨어지면 말짱 헛것입니다. 좋은 씨는 좋은 밭에 뿌려져야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씨앗인데, 좋은 마음 밭에 뿌려져야 합니다.  

제가 설교자로서 어떤 때는 ‘오늘은 참 설교가 잘 되어서 감사하다.’하는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 이렇게밖에 설교를 못했나?’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 후에도 교우들께서 저에게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송구하기도 하고 그분들에게 머리가 숙여집니다. 왜냐하면 그런 교우들은 사실 어떤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건강하니 어떤 영적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설교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길가, 돌밭, 가시밭은 모두 병든 심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병든 심령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페루의 선원들이 아마존 강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스페인 배 한 척이 강 위에 떠 있는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페루 선원들이 스페인 배에 올라가보니 사람들이 다 쓰러져 있었습니다. 입술은 새까맣게 탄 채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페루의 선원들이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마실 물을 주시오. 우리는 지금 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소" 스페인 사람들은 넓은 아마존 강에 떠 있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목숨을 잃을 뻔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은혜를 퍼 올려 마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살기 때문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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