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죄와 벌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10> 죄와 벌

정원교회 0 3359


땅콩회항사건으로 시끄러운 대한항공의 조현아씨가 지난 12일 법정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벌의 딸로 태어나,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았고,, 항상 남들 위에 군림하는 ‘슈퍼 갑’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 실형을 선고 받고 옥에 갇히는 처참한 신세가 되었다. 자기에게 이런 험악한 일이 생기리라고 꿈엔들 상상이나 했을까,,, 

인생을 살다 보면, 꿈 속에서조차 상상도 못해 본 일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 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모든 인생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늘법정에 서야 한다.  

조현아씨의 변호인단은 다음 날 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세상 법정에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항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하늘법정에서 내려지는 선고에는 재심이 없다. 단 한 번의 재판으로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이 된다. 그리고 그가 갇히게 될 감옥은 세상감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감옥이다,,, 그 감옥은 영원한 상실감과 영원한 분노와 영원한 어둠과 영원한 고통이라는 감옥이다. 성경은 이 감옥을 지옥이라고 말한다. 

하늘법정에서는 유죄와 무죄, 두 가지의 판결만이 있을 뿐이다. 무죄선고를 받는 자들은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가지만, 유죄선고를 받은 자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하늘법정에서의 사형선고란 죽어서 그 존재가 없어지는 걸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어도 죽을 수 없고, 고통만 계속되는 영원한 감옥에 갇히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마가복음에서 지옥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막 9:48-49) 자기 살을 파먹는 구더기들도 죽지 않고,, 소금에 절이듯이 불에 절여지는 고통이 끝없이 계속된다,,,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살벌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일어날 일이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일은,,, 그런 일이 설마 내게 일어날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다. 

구원과 천국을 믿으면서도, 그 반대편에 있는 심판과 지옥은 믿기가 쉽지 않다. 설사 믿어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이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천국만 있고 지옥은 우리의 뇌리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칼 메닝거는 현대인의 가장 큰 정신병리현상을 “죄인은 많은데, 죄의식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죄인은 많은데 죄의식은 없다,,, 죄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사실 이게 문제다. 어찌 이 말이 현대사회와 현대인에게만 해당이 되랴,, 현대교회와 신자들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오늘날 사회는 물론이고, 교회에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도 결국은 죄의식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죄란 무엇인가,, 죄란 단순히 살인, 강도, 강간, 도둑질 같은 도덕적 범죄행위를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죄라는 말은 원래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마음이 하나님이라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다. 그리고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과 같은 도덕적 범죄는 물론이고,, 시기, 질투, 다툼, 분쟁이나 돈 욕심, 명예욕 같은 이기적인 욕심들은 죄의 결과로 나오는 구체적인 행동들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범죄라고 한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때,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양궁은 세계최강이다. 양궁선수들이 활을 쏠 때, 과녁을 정조준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해서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쏜다. 그래도 백발백중 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세계 챔피언이라고 해도 실수가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과녁을 정조준 하지 않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화살이 과녁에서 한참 벗어나, 엉뚱한 곳을 날아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죄란 바로 이런 것이다.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지 못하는 상태가 죄다. 그 결과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게 되는 거다,, 삶이라는 화살이 하나님과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삶이 어느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지 모른다는 데 있다. 설사 백발백중이 아니라 할지라도,, 수시로 자신의 삶을 체크하며, 하나님께로 삶의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자가 신자다. 머리와 마음과 몸으로 믿어야 진짜 믿음이고, 생각과 마음과 삶의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어야 진짜 신자다. 

신자란,, 예수의 피가 어떤 피인지 잘 알기에, 그러하다. 그 피에 담겨있는 희생과 사랑과 고통의 무게와 깊이를 알기에,, 신자는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밖에 없다. 설사 육신의 한계로 수시로 오발탄을 날릴 지라도,, 끊임없이 신자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사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고통은 신자들이 받아야 할 고통이다. 십자가의 고통은 신자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다. 그러하기에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주님에게 임한 지옥체험이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신자들 대신 유죄선고를 받으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로 잠시 지옥에 버려지심으로써,,, 신자들은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나,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옮겨진 것이다. 

오늘날 주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가볍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볼 일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원은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려는 의지를 요구한다. 하늘법정에서의 최후의 심판은 없는 것이 아니라, 유예되어 있을 뿐이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손을 내미시며,, 기회를 주신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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