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다스리라. (민 20:2-13, 약 1:19-2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분노를 다스리라. (민 20:2-13, 약 1:19-2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최근에 대한민국의 분노가 참 심각합니다. 한 주차장에서 4명의 건장한 사내가 50대 남성을 무차별로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흉기도 없는 사람을 야구 방망이로 때려서 반신 마비가 된 것입니다. 더 기가막힌 것이 그 이유가 횡단보도에 걸친 차를 빼달라는 말 한 마디에 순간 화가 치밀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분노입니다. 최근에 한국 사회를 일컬어 ‘분노 대한민국’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분노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분노의 감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분노를 다스리고 사느냐’ 아니면 ‘분노에 끌려 다니느냐’입니다. 여기에 따라 삶의 성패가 달라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인 모세는 민수기 12:3절에 보면 온유함이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더했다고 나옵니다. 그럼에도 본문에서 모세는 한 순간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뼈아픈 삶의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지내고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와서 보니까 물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곳은 40년전에 하나님이 물을 주셨던 장소였습니다.  

회중들은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3-5절)”  하나님이 물을 주셨던 기억을 잊어버리고, 똑같이 모세에 원망하고 대드는 것입니다. 아마 모세도 “내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지난 40년간 애를 썼단 말인가?” 마음에 분노가 일고 회의가 들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살다 보면 모세처럼 분노할 수밖에 없는 여러 상황들을 직면합니다.  그럼으로 본문을 가지고 분노를 다스리는 성령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분노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원망하는 백성들을 뒤로하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놀랍게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시라고 합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은 백성의 요구를 들어 반석에 물이나게 해주십니다. 무지하고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 한 번 눈 감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마음에 백성들이 얼마나 괘씸하고 한심한지 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친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분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내야 하는데, 자기 감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결과가 12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2절)” 인간적으로 보면, 모세가 분을 낸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분을 참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했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식사 예법에 몹시 엄격했습니다. 손주인 왕자들은 식사 시간을 언제나 무서워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왕자는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에드워드 7세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버럭 화를 내며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 소리를 질렀고, 왕자는 놀라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에드워드 7세는 왕자를 조용히 불러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 "이제는 늦어버렸어요." "늦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때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어갔었어요." 

우리가 기억할 것은, 분을 참지 못하면 이미 늦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20)”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분노하지만 않았어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분노라는 것이 들어가고 나면 거기에 마귀가 틈타고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2. 어떻게든 노하기를 더디하라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불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격을 알고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 화가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쓴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후에 그 편지를 사흘 동안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그 때 그 편지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마크 트웨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분노의 감정이 솟구칠 때 시간을 두고, 노하기를 더디하였다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합니다. 또 잠언 14:17에 보면,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고 말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3. 분노를 잘 다스리라

사람들이 이 분노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분노를 안으로 삭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를 밖으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최근에 분노 조절 장애라는 것이 있는데 이 분노 조절 장애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자주, 과도하게 표출하는 방식입니다. 

치유상담으로 유명한 정태기 교수님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부인까지 얻어서 9 남매를 데리고 살았는데 언제나 자식들에게 폭군으로서 군림하였습니다. 정 목사님은 아버지가 얼마나 싫었으면 집에 잘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에 상처가 있으니까, 이유 없는 불안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화풀이의 대상으로 만만한 사람을 골라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일하러 오는 파출부 아주머니 아들을 이유 없이 괴롭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누구든 분노의 감정을 생길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분노를 다스리는 두 가지 성경적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분노의 상황에서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라. 

3년간 동고동락하고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은 마지막에 다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분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떠나 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을 위로하면, 그들의 입장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분노 대신에 긍휼의 마음이 나오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분노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라. 

사도바울은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전도하다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게 됩니다. 그런데 선한 일을 했음에도, 감옥에 갇힙니다. 귀신 들린 아이를 통해 돈 벌던 사람이 고소한 것입니다. 바울도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고 기대한 것입니다. 오히려 분노를 다스리니, 하나님의 일하시는 역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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