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까?(눅 24장 13-17절)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까?(눅 24장 13-17절)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신앙이 되라


우리가 보통 사람에 대해서 아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그 사람에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직접 그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둘 중 더 좋은 방법은 듣는 것보다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동일합니다. 듣는 신앙이 아닌 만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도 마찬가집니다. 참된 부활의 신앙을 가지려면 부활의 예수님을 듣기만 해서는 안 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제일 먼저 무덤에 찾아간 사람들이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갈 때는, 큰 슬픔과 무거움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떠날 때는 큰 기쁨으로 달음질을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에게 무덤 같은 문제들이 떠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완전히 슬픔과 절망에 싸여 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절망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마음이 뜨거워지고(32절)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처럼 이 부활의 사건 중에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대목입니다. 오늘은 이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합니다.


1. 부활의 주님이 누구를 찾아오시는가?


예수님은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을 모함하고 죄를 씌어서 죽게 한 사람들을 찾아갈 텐데 예수님이 찾아가신 사람은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고, 죽게 한 사람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예수님처럼 그것들로부터 자유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을 제일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들의 타이틀은 예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시자 그들은 고아처럼 되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저 엠마오로 정처 없이 슬픔과 절망에 싸여 내려가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두 제자에게 찾아가셨습니다. 찾아와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13-15절은 말합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혹시나 내 영혼이 예수를 잃어버리고 고아같이 되었습니까? 어느 샌가, 내 삶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고 있습니까? 이 부활절 아침에,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처럼 고아같이 되어버린 우리를 찾아와 동행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2. 부활하신 주님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놀라운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과 같이 동행함에도 그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16절을 보면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라고 전합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내게 찾아오셔서 나와 동행하신다 할지라도 그 예수님을 믿음의 눈을 떠서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활의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적인 눈을 떠서 주님을 보아야합니다. 본문 속 두 제자의 영적 눈을 가린 것은 슬픔과 절망이었습니다. 17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라고 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하는데, 여기에는 필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기도로 내 사정을 아뢰는 가운데 슬픔과 절망을 벗어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것은 제자들을 향한 질문이었습니다. 19절에 “무슨 일이냐?”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사정을 물으십니다. 사실 두 제자는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온 삶을 걸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예수님이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충격과 슬픔에 빠져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셔서 먼저 “무슨 일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가 슬픔과 절망과 분노와 혼란에 싸여 인생의 엠마오로 내려갈 때 그 길에 찾아오셔서 물으십니다. “무슨 일이냐?”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 아뢰면 됩니다. 어떤 이야기든 주님께 내 사정을 아뢰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아빠와 엄마에게 털어놓듯이 자기 사정을 말하면 됩니다.


2)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말씀을 읽고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속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25절에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하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믿기를 더디 하지 말고 믿기를 속히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나 그 말씀 하나하나를 마음에 믿을 때 비로소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2절은 그것을 증언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역사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뜨거운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두 제자들은 뜨거운 사랑의 교제를 할 때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0-31절에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전합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교제를 말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떡을 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부활의 주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서로 떡을 떼는 관계가 될 때, 뜨거운 영적인 교제가 있을 때, 거기서 주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날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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