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17 )-영생을 걷는 나그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17 )-영생을 걷는 나그네

정원교회 0 2411
영생이란 무엇일까,, 영생은 부활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성도의 부활은 영생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영생,, 영생이란 무엇일까? 영원히 산다는 뜻일까? 영원히 산다,, 마냥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영원히 산다는 것도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영생을 흔히 영원한 시간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부활한 성도들은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는 삼차원의 세계가 아닌, 즉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해 초월적인 어떤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떤 상태일까,,,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깊은 연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부부 간에 살을 맞대고 깊은 관계를 맺을 때도 같은 단어를 쓴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아버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깊고 끈끈하고, 아주 실질적인 연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실질적 관계,, 이것이 영생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와는 마치 신랑과 신부처럼,, 그만큼 깊은 영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상태,, 이것이 영생이다.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공유함으로써, 예수님과 영적으로 깊은 연대감을 갖는 의식이다.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깊숙이 결합된 모습으로,, 하나님 아버지와는 부모자식이라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상태다. 어떤 상태일까,, 천상적 상태와 지상적 상태다. 육신의 부활과 연관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천상적 상태와 현재의 삶 가운데 지상적 상태다. 

천상적 상태,, 육신의 부활을 떠나서는 영생을 상상할 수 없다. 부활은 단지 영혼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과 영혼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영생이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인간은 항상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허점 투성이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지금처럼 불완전하고 허점 투성이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영혼도, 거룩하고 흠 없고 티 하나 없는,, 영광된 모습으로 모든 성도들은 일으켜 세우심을 받는다. 완전히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그분의 자녀답게,, 우리도 완벽한 모습으로,, 잡티 하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천상적 존재로 들어간 상태,,, 모든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상태,,, 이것이 영생이다.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지금처럼 연약하고, 불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완전히 아는 상태, 즉 모든 면에서 완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영생이다. 

이처럼 완전히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상태,, 모든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갖게 될 실체다. 여기에 성도 됨의 영광이 있고, 믿음의 축복이 있다. 이러한 육체의 부활과 영생의 확신이 없이는 기독교 신앙은 존립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시 지나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은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삶 안에는 영생이라는 놀라운 생명력이 살아있다. 그들 삶 속에는 영생이라는 영광의 소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영생을 사모하며 사는 자들이 성도들이다. 그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며,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처럼 산다(히 11:13-16). 그들의 시선은 현재의 삶을 넘어,, 영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에 있는 본향, 즉 영생을 사모하며,, 위대한 꿈을 품고, 인생길을 걸어간다. 마치 초인처럼,,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이 아니라,,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통 큰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 그들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천상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나그네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의 피로 사신 그분의 자녀들이다. 결코 취소될 수 없고, 파기될 수 없는 주님의 피로 맺은 새언약의 자녀들이다. 영생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즉, 관계 속에서 실존하는 현실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실존하는 삶의 현실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요,, 이미 영생에 들어가 있는 나그네들이다. 하나님 아버지와는 자녀로서의 깊은 관계 속에 있는 나그네요,,, 주님과는 굳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나그네들이다. 

나그네,, 그들은 지나가는 자들이다. 바람처럼 지나가지만,, 바람을 잡으려 들지는 않는다. 세상의 헛된 바람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돈과 권력에 그렇게 집착을 할까,, 광야같이 삭막한 이 세상, 강해지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돈과 권력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고아들이다. 자신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들이다. 

그러나,, 영생을 걷는 나그네들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다. 친히 아버지가 되신 창조주 하나님,, 그분의 사랑,, 십자가에 부어진 바 된 그분의 사랑,, 그 영원한 품 안에서,, 영생을 걷고 있는 나그네들이다. 광야에서 초장을 걷는 나그네요,, 사막에서 샘물을 긷는 나그네다. 광야에서 기쁨을 노래하며 영생을 걷는 나그네들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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