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뿌리째 흔드는 시련이 찾아올지라도(왕하 4장 8-17절)-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믿음을 뿌리째 흔드는 시련이 찾아올지라도(왕하 4장 8-17절)-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누구나 시련과 역경을 맞이하는데,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상된 시련과 역경입니다. 이것은 대략 각오도 준비도 해서 감당하기가 수월합니다. 두 번째는 예상치 못한 시련과 역경입니다. 이런 경우는 당황하며 깊은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은 심한 경우 우리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도 흔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 이 같은 시련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8절의 수넴 여인입니다. 성경에 이 여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귀한 여인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경제적으로 넉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있어서 정말 귀한 점은 그 경제적인 넉넉함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성심껏 돕고 섬겼습니다.


엘리사가 사역을 위해 수넴을 지날 때 이 여인은 그냥 지나가게 하지 않고 8절을 보면 간권해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간권이란 대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인이 엘리사를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했는지, 10절을 보면 방을 담 위에 지었다고 합니다. 즉, 옥상을 따로 만들어 편안하게 묵고 갈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려에 감동한 나머지, 엘리사는 뭔가를 좀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니 이 여인에게는 남모르는 큰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늙어 가는데, 아들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아들이 없다는 것은 여인의 큰 수치요 슬픔이요 고통을 말합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여인을 불러 16절에 “일 년 후에 아들을 낳으리라”라며 놀라운 축복의 예언을 하고, 정말 일 년 뒤 기대하지 않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넴 여인의 이야기가 이처럼 행복하게 끝날 거 같았지만, 18절부터는 불길한 전조가 등장합니다.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아이는 추수하는 들판에 나갔다가 머리가 심하게 아파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죽고 맙니다. 여인에게 있어 이 아이는 평생 자식을 못 낳고 아픔 속에 살다가 뜻밖에 얻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행복의 이유였던 아이가 자신의 무릎에서 죽고 만 것입니다.


이 시련은 그녀의 믿음을 뿌리째 흔드는 시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이 아이는 수넴 여인이 원해서 얻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뜻밖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 행복감을 누리는 것도 잠시 갑자기 그 아들을 데려가신 것입니다. 여인은 얼마든지 하나님께 “아이를 주셔서 기쁘게 하신 것이 결국 이렇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까?”라고 원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련은 시련이되 믿음을 뿌리째 흔드는 시련입니다.

본문 통해서 그 시련을 수넴 여인이 어떻게 이겼는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1. 어떤 시련 속에서도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아들이 죽는 그 어려움 속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굴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여인에게 그런 행동이 있지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게다가 아들을 눕힌 곳은 하나님의 사람이 누웠던 침상입니다. 이것은 여인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충격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끈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태산 같은 문제가 닥쳐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8:2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어떤 시련과 역경의 폭풍이 밀려와도 절대로 믿음의 끈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어떤 시련 속에서도 입술로 나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본문의 수넴 여인의 상황은 얼마든지 입을 열어서 비난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22절에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라며 남편에게 아들 일에 대해서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사람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내가 이상했는지 남편이 의아해서 “오늘은 선지자에게 갈 날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요?”라고 물어보는데, 그저 “평안을 비나이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주석을 보니 이 말은 “걱정하지 마세요. 다 괜찮을 것입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해야 할 말이 이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괜찮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련이 찾아오고 역경이 몰려와도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도 이런 말을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입술로 평안을 선포할 수 있는 입술이 되길 원합니다.


3. 어떤 시련이라도 하나님께만 아뢰되 숨김없이 아뢰어야 합니다.


여인은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도 “평안이니이다” 했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물었을 때도 “평안하다” 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기까지 믿음의 끈을 부여잡고 그의 모든 감정을 억제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엘리사를 만나서 자기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다 쏟아놓습니다. 27-28절에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여인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도 내놓지 않던 자기의 슬픔과 원망과 애원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귀한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말도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될 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누군가에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말이 있거든 하나님께 기도로 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을 맞이할 때 슬픔과 원망을 사람에게 쏟아놓으면 화가 되어 돌아오지만, 하나님께 쏟아놓으면 은혜와 축복이 되어 돌아옵니다.


수넴 여인이 남편에게도 참고 엘리사의 종이 물어볼 때도 참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제의 해결이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시련과 역경을 맞이해도 낙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가 전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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