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귀하게 여기라(막 10장 13-16절)-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라(막 10장 13-16절)-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니지만, 이 주일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이 어린이를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무시당하고 소외된 계층이 있다면 바로 어린이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자주 말씀하신 소자 즉, 작은 자는 누구보다도 언제나 무시되고 소외된 어린 아이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온 아이들을 야단치고 쫓은 일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무시하거나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들을 소중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이신 이 교회 공동체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의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교회에 오는 것이 행복하고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알아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어린이 존중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올 때 제자들이 했던 실수가 있는데 하나는,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온 아이들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아마 제자들은 “야 애들은 가라. 너희같이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 예수님께 오냐?”라는 식으로 꾸짖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아이들은 귀찮은 존재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기상천외한 말씀을 하십니다. 14절에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너희들이 귀찮게 여기는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들에게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와 같은 모습을 배워야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어떤 모습이 그렇습니까?


1) 어린이는 순수합니다.


순수한 사람은 어떤 말을 들을 때 그냥 그 자체를 믿어주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말이지요. 오병이어 기적을 보면 어린 아이의 도시락만이 선택됩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분명 먹을 것을 싸온 사람들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때 내놓은 것은 어린아이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만이 순수하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2) 어린이는 주위 모든 것에 진실하고, 또한 그것을 신뢰합니다.


아이들은 주위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신뢰의 눈으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아진다는 것은 바로 이성으로 따지기보다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자세이며, 천국에 합당한 자세인 것입니다.


3) 어린 아이는 자아의식이 없거나 약합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내가 없습니다. 어른들은 자아의식이 너무 강하고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은 반면 어린 아이들은 자아의식이 없거나 약합니다. 대신 그들의 부모를 의지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 신앙에서 꼭 필요한 모습입니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어린 아이와 같아서 하나님이 없으면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어린 아이의 신앙입니다.


4) 어린이는 용서를 잘합니다.


만약에 아이들이 어른들처럼 서운해 하고, 노여워하고, 분을 품는다면 아이들 가운데 정상적인 아이가 몇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잊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잃어버린 용서와 관용의 능력을 어린이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이 어린이를 향해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그들을 존중한 것처럼, 아이들을 볼 때 그들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배워야 합니다.


2. 아이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 속에 아이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은 것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14절에 “...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충격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이 아이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가장 가로막는 것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부모들입니다. 한 교회의 권사님은 아직도 후회하는 것이 아이에게 고3때 “교회는 언제든 갈 수 있으니 일 년만 교회 쉬고 대학 갈 때 까지만 진학에 전념하라“했던 권면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교회로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주님께로 가는 길을 부모가 막은 셈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3. 아이를 바르게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보석과 같은 아주 귀한 존재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즉 원석입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귀하지만 그 자체만을 가지고는 쓸모가 없습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은 잘 다듬어질 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러한 존재인데, 그들을 다이아몬드같이 되게 하는 사명은 바로 부모에게 있습니다. 잠언 22: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부모가 아이들을 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열심히, 부지런히, 틈날 때마다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부지런히 가르쳐야하면 신 6:7-9처럼 가르쳐야합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 이렇게 부지런히 가르쳐야하는 이유는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악하여 아이들의 영혼이 너무도 쉽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속에 악이 틈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채워주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을 사랑하되 바르게 사랑하는 부모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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