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봉은사와 차범근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22>-봉은사와 차범근

정원교회 0 3988


얼마 전에 서울시에서 지하철 9호선의 한 역 이름을 봉은사역으로 정하자, 일부 시민단체와 개신교측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며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고,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근처에 코엑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절 이름을 역명으로 했느냐,, 코엑스나 다른 이름을 사용하라,,, 

그런데 최근에는 경기도 화성시가 길 이름을 ‘차범근로’로 정하자, 불교계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근처에 용주사라는 유명사찰도 있는데, 왜 교회 집사 이름을 도로명으로 했느냐,, 차범근은 축구와 교회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뭐 시비 걸 걸 걸어야지,, 차범근 하면 누구나 대한민국의 축구영웅으로 기억하지, 누가 차범근집사로 기억하나,,, 어쨌든 결국 차범근 본인도 고사하고 해서,, 화성시는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요즘 종교 간의 대화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종교,,, 종교문제로 서로 싸우지 말고, 대화하며 사이 좋게 지내자,,,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언짢아진다. 기독교는 종교인가,,, 기독교는 세상에 있는 많은 종교 중 하나인가,,, 

불신자들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아니,,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종교란 무엇인가?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종교든, 고등종교든, 종교란 인간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그래서 신을 믿든지, 안 믿든지,, 

종교의 출발점은 언제나 인간 자신이다. 원시시대에는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신이 노해서 일으킨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에게 빌고, 재물을 바치고, 심지어 사람을 바치기도 했다. 신을 기쁘게 해드려서 재앙을 피하고,, 나가서 복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의지하기 위해서 어떤 신, 또는 신적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 종교다. 이왕이면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신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구약성경에서 가나안 땅의 이방민족들이 믿었던 바알이라는 신이다. 바알은 풍요와 다산을 보장하는 신이다. 한 마디로 돈과 권력과 성욕을 채워주는 신이다. Money, Power, Sex,,,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것도 결국 이 세 가지 단어로 요약이 된다. 

바알을 숭배하는 성전에는 성창이라고 해서, 소위 거룩한 창녀들 있었다. 성전에 가서 신에게 제사도 드리고, 복도 빌고, 남 눈치 볼 것 없이 떳떳하게 성적 욕망도 해결할 수 있었다. 창녀만 있는 게 아니라, 미동이라고 남창들도 있었다. 창녀든, 남창이든, 이들 이름 앞에는 ‘거룩’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는데, 성전에서 이들과 갖는 섹스는 거룩한 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종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미혹했겠는가,,, 인간의 불안을 해소하고, 욕심과 욕망을 타 채워줄 수 있는 신,,, 그런 신을 만들어 놓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신을 숭배하는 것이 가나안의 종교였다. 

결국 구약의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도,, 이런 이방종교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기가 너무 힘들어요,,, 하지 말라고 금하는 것도 많고, 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도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방신은 너무 좋아요,, 내 욕심과 욕망을 다 채워줘요,,, 

이스라엘은 어쨌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었다. 그런데 욕심과 욕망은 끝없이 일어나고,, 그렇다고 하나님을 안 믿자니 두렵고,, 그래서 하나님도 믿고, 이방신인 바알도 믿고,,, 성전 한 구석에 바알이라는 우상을 갖다 놓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나서는 바로 바알에게 절하고,,, 겉으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는 바알을 섬겼던 것이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해서 만든 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죽은 신,,, 그 조작된 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겼다,,, 그 신은 다름 아닌 인간의 욕심과 욕망의 결정체다. 인간 안에 있는 욕심과 욕망이라는 우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신으로 만든 것이다.

십자군 전쟁,,, 중세 서유럽의 로마 카톨릭 국가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약 200년 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을 공격한 전쟁이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함으로써,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냈다. 로마 교황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영주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추악한 욕심이 십자군이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정복전쟁을 일으키고, 무수히 많은 생명들을 앗아갔다.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를 앞세우고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욕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는 바알을 숭배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똑 같다. 예배 드리고 나서는 바로 세상에 절하지 않는가,,,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고,,, 기독교신앙이 종교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에서 시작하고,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이 종결되는 신앙체계다. 실제로 존재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기독교 신앙이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삶 가운데 살아있어야 신앙이다.얼마 전에 자살한 성완종씨가 장로였다,, 스님을 멘토로 두고, 자살하기 전에 점쟁이를 찾아갔다,, 또 그 돈을 받아먹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장로님들이란다,,, 그러자 목사들이 내가 질소냐 여기도 있다 하고,, 바로 사고를 쳤다. 서울의 초대형교회의 목사가 서울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폰으로 여자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기독교가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바알은 오늘날에도 기독교 안에 살아있다,, 인간들의 욕심속에 살아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