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오라 (마 11:28-3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내게로 오라 (마 11:28-30)-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인생의 짐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때로는 너무 무거워 우리를 쓰러뜨리고 넘어뜨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 때문에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류 역사상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인생들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상의 성현들은 보통 말하기를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한다.”라고 방향들을 제시하였지, 그 누구도 “수고하고 무거운 이 인생들을 향해서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한 성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늘은 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우리 힘으로는 인생의 짐을 해결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인생의 짐을 덜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짐을 더는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수단으로 인생의 짐을 덜어보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헛된 수고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짐을 덜고 전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짐이 덜어진 게 아닙니다. 하나의 짐을 해결하면, 또 다른 짐들이 우리를 억누르는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다윗 왕도 큰 인생의 짐을 안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큰 인생의 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울 왕의 끝없는 살해의 위협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까봐 늘 초조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쓰러지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짐이 무거워 지치고 쓰러지려 할 때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자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짐을 지게 됩니다. 바로 죄의 짐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자기 부하의 아내를 탐하고 빼앗음으로 하나님께 범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죄의 짐이 무거운 것도 무거운 것이었지만, 삶의 치명적인 결과를 남겼습니다. 아들이 반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의 삶을 통해서 죄의 짐이야말로 가장 무겁고 괴로운 짐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무엇보다 이 죄의 짐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고, 내 영혼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맛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우리의 수고와 짐을 가지고 예수께로 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볼 때 안타깝게 생각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함께 슬퍼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힘이 없습니다. 해결해 줄 힘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힘이 없을 때 우리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가면 방법이 있습니다.

 

세상에 보면, 인간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기 위한 네 가지 철학 사조가 있습니다.


1) 도피주의

도피주의라는 것은 인생의 무거운 짐이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피하는 것입니다. 그걸 맞이하는 게 너무 괴로우니까, 마약이나 놀음, 쾌락 등으로 도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허입니다.

2) 냉소주의

냉소주의는 인생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와 무거운 짐으로 마음이 냉랭해져 사람이나 문제에 대해 무엇이든지 업신여기고 비웃는 것입니다. 이 냉소주의는 감동이 없습니다.

3) 인본주의

인본주의는 인생의 무거운 짐이나 문제를 만났을 때, 그걸 어떻게든 내 힘으로만, 내 지식으로만, 내 능력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잘 아시는 인생의 전문가이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내 힘과 내 능력만 믿고 사는 사람의 결과는 허무합니다.

4) 초자연주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이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흔히 점을 보러 갑니다. 그러나 점보는 것과 같은 행위를 통해 우리 인생의 짐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이 무거운 짐, 이 괴로운 수고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 앞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가면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가면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알 수 없는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길이 열리고 문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3.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29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멍에를 메라고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멍에를 메라는 말씀에 혼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라”라고 말씀하실 때, 이 멍에는 밭을 갈거나 짐을 운반할 때 소에게 지우는 농사기구인데, 예수님이 사셨던 팔레스틴에서 쓰는 멍에는 혼자 메는 멍에가 아닙니다. 경험이 많은 소와 경험이 없는 미숙한 소가 짝이 되어, 미숙한 소가 노련한 소가 이끄는 대로 가게 하는 것이 멍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멍에가 이 멍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때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멍에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믿는 자라고 해서 문제가, 짐이 없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믿는 자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멍에를 메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어떤 멍에를 맨다 할지라도 그 멍에가 예수님의 멍에가 되면 그 멍에는 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멍에는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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