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목사와 성도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24 > 목사와 성도

정원교회 0 3099

성도,, 평신도 시절 나는 성도였다. 그 흔한 집사 소리도 들어보지 못하고, 성도로 2년 동안 지내다 바로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었다. 교회에서 성도라고 할 때는 보통 세례를 받고, 서리집사가 되기 전의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평신도나 성도라는 말은 좀 거북스럽다. 목회자나 전도사 같은 사역자들과 일반 신자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평신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다. 사역자들은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특별한 신자고, 일반 신자들은 특별하지 않은 신자인가? 또,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제 막 신앙에 입문한 세례교인들만 성도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다 신자들이고, 신자들은 모두 성도들이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받은 은사와 맡은 직분에 따라 교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그것은 역할의 차이지, 직분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는 계급은 아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각 신자들은 몸의 여러 지체들에 비유하고 있다. 목회자도, 장로나 권사, 집사들도 그 지체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몸에서 눈이 하는 일이 다르고, 귀나 입이나, 손과 발이 하는 일이 다르듯이,, 서로 하는 역할이 다를 뿐,,, 몸의 여러 지체들은 모두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목회자가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고 교인들을 바르게 양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영성은 말씀을 통해 나타나기에, 그 교회의 영성은 목회자의 영성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목회자의 책임의 막중함을 나타내는 것이지, 목회자의 계급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직분에 있지, 목회자 개인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가 인간적인 권위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목회자를 가볍게 대해서도 안 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더욱 존경하라고 하였다(딤전 5:17). 물론 여기서 장로가 오늘날의 장로와 같은 개념은 아니다. 목회자와 장로를 포함한 교회의 리더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교회의 리더들이 존경을 받아야 하고,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 더욱 존경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맡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 만큼 하나님과 교회 앞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사명감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성실하게 섬기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0장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자신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우의정과 좌의정으로 앉혀달라고 주께 부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살로메는 치마바람의 원조?) 그러자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세상에 속한 권력자들은 군림하려 하지만,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 주의 나라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요, 우두머리는 그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주님조차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십자가,,, 섬김의 자리는 십자가의 자리다. 자신을 조롱하고 모욕하면서 채찍질 하고,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자들을 끝까지 품으시고 섬기신 주님이시다. 십자가,,, 가장 낮아진 곳,,, 그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내시고, 품으셨다. 조롱하고 멸시하며, 채찍질 하고, 대못을 박은 자들까지도,,, 

바다가 모든 강물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은 깊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일수록 많은 물을 담아낸다,, 십자가는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바다다. 십자가가 영광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가장 높아서가 아니라, 가장 낮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내고 담아내며, 섬기는 사람이다. 십자가의 자리를 지키는 자,,, 낮아지는 자요, 주님께 깊이 빠진 자다.

성경에서 신자들을 성도라고 부를 때는, 그 초점이 거룩함에 있다. 거룩함의 첫째 의미는 구별됨이다.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들이 성도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16절에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성도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태어나 이 세상에서 살다, 이 세상을 떠난다. 죽지 않고는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없다. 이 몸이 죽어야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죽어야 성도가 된다. 몸이 아니라,, 세상에 속해있던 내가 죽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인 욕심과 욕망이 죽어야 한다.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있고, 절어있던 내가 죽을 때,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 6장 1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자,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자,,, 세상사람들과는 거룩하게 구별되고,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 성도들이다.

성도,, 오직 예수밖에는 자랑할 게 없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게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세상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들도 이미 세상 것들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성도가 되고 싶다. 십자가를 굳게 붙드는 성도가 되고 싶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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