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메르스,,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26>-메르스,, 당신은 안전하십니까?

정원교회 0 1675


한국은 메르스 때문에 난리가 났다. 17일 현재 162명 감염에 20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12.3%의 높은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일정도 연기되었고, 메르스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온 나라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메르스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성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혼 줄이 나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마산대학교에서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던 중 원자폭탄보다 메르스 독감을 더 무서워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원자폭탄보다 메르스 독감을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원자폭탄은 잠재적 위험인데 반해서, 메르스 독감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적 위협이기 때문이리라. 원자폭탄은 메르스 독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위협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잠재적 위협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교회의 현실과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과연 우리 영혼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나,,,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인생을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 영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과정도 중요하고, 내용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영생에 있다. 영생을 떠난 믿음은 존재할 수 없고, 영생을 떠난 하나님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영혼구원보다는 현실의 삶에 훨씬 더 집착을 한다. 김문수 지사 말처럼,, 원자폭탄은 무서워하지 않고, 메르스 독감을 더 무서워한다. 김 지사는 원자폭탄이 터지면 불다가 된다고 말했다는데,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런 불바다 속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하는, 영원한 고통 속에 던져지게 된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에서, 불로 소금 치듯 함을 받는다(막 9:48,49)

구원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심각한 문제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에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첫째 목적도 영혼구원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따라서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을 이루셨다. 우리는 단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맞나, 틀리나,,, 맞지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한국에서 강해설교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서울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님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하루는 목사님 교회에 학교 은사가 오셔서 구원에 관한 설교를 했는데, 앞의 내용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교인들은 은혜를 받고 좋아하는데, 목사님은 “큰 일 났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단다. 뭐가 문제인가? 

믿기만 하면 된다,, 거기서 끝이다. 그리고는 바로 믿음의 축복으로 넘어가는 게 문제다. 믿음이라는 게 뭐냐에 대해서,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게 문제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도 변화가 없고, 믿음의 능력도 체험하지 못하며,, 엉뚱한 복만 구하는 기복적 신앙에 머물러 있게 된다.

주님께서 지상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였다. 회개 없는 믿음은 없다. 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다(요 3:3,5).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인정합니다” 하는 단순한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믿음에는 이에 수반되는 내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주님으로 모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때,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회개와 거듭남이 없는 믿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믿기 전과 후가 확실하게 변해야 한다. 먼저 표정부터 바뀐다. 완고했던 얼굴이 온유한 모습이 되고, 사나운 눈이 부드러워지고, 세상을 사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이 바뀐다. 나만 잘 살면 되지가 아니라, 이제는 주위사람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이타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야 하고 인정할 정도로,, 겉 모습과 마음 씀씀이와, 사는 모습에서 확실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먼저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마음으로 믿는다는 말은,, 마음의 새로운 변화를 포함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는 것을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고 말한다. 세상에 속해 있던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 중심에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기독교신자다,,,

아직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예를 들면,, 금반지냐, 도금한 반지냐 하는 것이다. 도금한 반지는 겉은 금이지만, 속은 금이 아니다.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도금한 반지에 불과하다. 교회 다닌다고 다 기독교신자가 아니다. 속 사람까지 금이어야 진짜 금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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