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돌아보아 내가 사는 축복의 비결광림교회 정존수목사

기독교


 

남을 돌아보아 내가 사는 축복의 비결<민 32:1-11절>광림교회 정존수목사

우리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존재라고 합니다. 영국의 목사이자 시인인 존 던은“인간은 그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며, 그 자체로는 완결될 수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 중 누구도, 아무리 잘난 사람도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어울려 살다보면 서로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서운하고 관계에 금이 가서, 결국에는 서로 등을 돌리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은 서로 서운하고 속상한 관계가 있었을지라도 회복으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나 같은 자도 사랑하셔서 먼저 다가오셨고 관계를 회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발전을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경쟁의 원리였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상이 우리에게 넣어준 생각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돌아보라고 요구합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은“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성경 속의 선한 사마리아 비유일 것입니다.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다 빼앗기고 매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마침 그곳을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갔는데,“저 사람을 돌아보다가는 나도 죽는다.”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는데, 그는 사람의 상처를 싸매주고 도와주고 자기 돈을 들여 여관에 데려갔습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이웃을 돌아본 사마리아 사람을 참된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참된 생명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남을 돌아보아 내가 사는 축복입니다. 오늘은 그 축복의 비결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형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 본위로 생각하고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사람의 본성입니다.피아제라는 학자는 유아기의 특징을 자기중심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철 든다는 말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타인을 의식하며 배려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게 철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태도에 빠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때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들어가기 직전에,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시기였습니다. 그 땅은 야셀과 길르앗 땅으로 아주 좋은 목초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여기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요단을 건너 모두 힘을 합쳐 가나안의 견고한 성읍들과 싸워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는데, 1절에 보면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들이 이 땅이 목축하기 좋은 땅이니까 모세를 찾아와“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5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이 땅을 차지하고 여기 머물러 요단을 건너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다른 지파들이 요단을 건너가 싸움을 해서 피를 흘리든 말든, 그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6절)”라고 자기들만 생각하는 갓과 르우벤 자손들을 호되게 책망을 합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주변 사람들을 정말 힘들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태도는 바로 나 본위로 생각하고, 나 본위로 말하고, 나 본위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죄의 핵심은 바로 자기 본위의 삶, 자기중심적인 삶에 있습니다.죄를 뜻하는 영어가 Sin인데 그 중 가운데 글자가 바로 I입니다. 내가 중심에 서 있는 게 죄라는 말입니다. 르우벤과 갓지파의 태도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모세는 6절 중간에“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라고 말합니다.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너희 형제가 피 흘리며 싸우는데, 너희만 여기에 머물고자 하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형제의식입니다. 서로를 바라볼 때 내 형제라는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7절에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곧 낙심케 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는 죄보다 사람 목에 연자 맷돌을 달아 빠트리는 게 오히려 낫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모세도 7절에서 바로 낙심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그러니까 르우벤, 갓 지파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해서 다른 사람들을 낙심하게 하느냐고 질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쉽게 다른 사람을 낙심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말입니다. 우리 몸 중에서 제일 작은 기관이 혀인데 그 혀로 내뱉어지는 말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지 모릅니다. 막 마음이 뛸 듯이 기쁘다가도, 말 한 마디로 마음이 확 상하게 되고, 마음을 아주 암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바로 말이고 그게 낙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할 때 마음을 후비는 말, 뼈 있는 말, 가시 돋친 말,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넘어진 마음들, 쓰러진 마음들, 상처받은 마음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가장 유명한 사도가 바울인데, 그 사도 바울이 있게 된 데에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보다 더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인데 굉장히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 믿는 자들을 그렇게 핍박하고 박해하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 바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믿어주질 않습니다. 바울을 인정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그 바울을 도와주고 바울을 일으켜 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이 바나바와 같은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3. 남을 돌아보려면 영적인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깨닫고 “우리가 요단을 건너가 돕겠습니다” 할 때 모세는 21절에 그들에게“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우리 믿는 자들도 다른 사람을 돕고 돌아볼 때 무장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아가페 사랑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결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야 합니다. 미움의 요단, 시기의 요단, 자기중심의 요단을 건너야합니다.


남을 돌아보는 것은 내가 손해 보고 내가 어렵게 되는 원인이 아닙니다. 남을 돌아보는 것은 남도 살고 나도 살게 되는 축복의 비결입니다. 그것은 형제의식을 가짐으로, 다른 사람을 낙심케하지 않음으로, 영적인 능력으로 무장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 사실을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