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 131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 131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정원교회 0 3147


회개와 거듭남은 영혼이 깨어나는 소리다. 세상에 속해있던 과거의 ‘내’가 죽고,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것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영혼의 울부짖음이 회개요, 몸부림침이 거듭남이다. 이런 영적 각성을 체험할 때, 우리는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의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 안에 있는 죄악이라는 절망적인 세력이 얼마나 심각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자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지를 알기 때문이다.자신이 죄와 사망의 웅덩이 빠져 있음을 아는 자만이 울부짖을 수 있다. 그 절망의 웅덩이가 얼마나 깊고, 더럽고, 추악한지를 아는 자만이 절규할 수 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들만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 것들이 모두 죄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 수 있단 말인가,,, 회개하고 나도, 똑 같은 죄를 되풀이하는 게 연약한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여전히 토한 죄를 다시 먹는 자들이며, 죄 씻음을 받고도 죄 가운데 뒹구는 자들이다. 그러하기에 신자란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죄 없다 하시고, 흠 없고 티 하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저는 아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제 안에는 아직도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살려는 죄악이 가득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 앞에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니다,, 너는 깨끗해졌느니라,, 너는 나의 거룩한 자녀다,, 나의 독생자, 예수가 너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혔느니라,,, 너의 죄값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이미 다 치렀느니라. 나는 네게서 죄값을 묻지 않겠다.” 

이것이 십자가 사랑의 눈물겨운 역설이다. 아직도 우리 영혼은 여러 모양의 죄로 얼룩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하다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다. 

여기에 우리 신자들의 아픔이 있고, 은혜가 있다. 십자가가 우리의 가슴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시는 주님의 절규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그 절규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세상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와 모멸과 수치와 고난을 당하시고, 아버지로부터 유기당하는 극심한 고통,, 창세이래 모든 죄인들의 죄값에 대한 심판을 당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는 씻겨져 나간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모든 죄를 떠안으신 철저한 죄인의 신분이었다. 한 점의 죄도 없으시고 온전히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가혹한 벌을 절규 속에,, 십자가에서 받아내셨다,,, 이러한 주님의 절규가 우리 기독교신자들의 마음에는 살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님의 절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절감한다,,, 아들을 유기하고 심판하시는 성부의 아픔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누가 성자의 절규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랴,,,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란,, 성부와 성자의 극심한 아픔을 통해 누리는 은혜다.

회개와 거듭남이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정녕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안다면, 참으로 그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이런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예수님,,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요,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만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 죄인을 죄와 사망의 웅덩이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자녀로 삼아주셨습니까,, 저를 영원한 심판에서 건져내시고, 영생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감한 영혼은 이런 절규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자임을 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 여전히 몸부림친다. 자신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체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에게는 내세우고 자랑할만한 의로움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결코 교만할 수 없고, 남을 함부로 정죄하지도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앞에 조용히 머리 숙이며, 그 입에서는 감사의 고백만이 새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런 영적 각성의 체험 없이 너무 쉽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노래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죄에 대한 통렬한 회개와 거듭남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사실은 무서운 함정이다. 어쩌면 이런 잘못된 은혜와 사랑은 그 영혼을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이 바로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 누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 괴로워하고 아파하는가,,, 남의 물건을 훔치면 양심의 찔림을 받는다. 세상의 법을 어길 때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길 때는 아무런 찔림이 없다,,, 이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자가 아니라, 지키고자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다. 우리의 믿음이 참 인지 아닌지는 주의 말씀이 판단할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판단한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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