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 132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 132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

정원교회 0 3220


지난 17일에 삼성그룹 내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이 통과되었다. 삼성그룹이 합병을 단행한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이재용씨는 1968년생으로 만 47세의 젊은 나이에 삼성그룹의 실질적 오우너가 된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이 어떻게 삼성그룹이란 대재벌의 오우너가 될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월등히 뛰어나서일까? 아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에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서 태어나느냐가 중요하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면 왕자가 되고, 왕의 딸로 태어나면 공주가 되고,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나 재벌보다 훨씬 힘이 없고, 작아 보인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왕자나 공주, 재벌의 자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당당하고 담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창조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영생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말이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보기 드물고, 초라하고 궁색하고 나약한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 즉 그 이름을 믿는 자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셨다(요 1:12). 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이미 주셨다고 선언하셨다. 권세란 우리 말로 ‘권리’ ‘권위’ ‘능력’ 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를 이미 갖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위를 갖고 살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부여 받은 것이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자, 그분께서 친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듯이,, 아니,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권적으로 돌보시고, 책임지고 계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국이라는 영원무궁한 복락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 “너는 나의 자녀다”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위를 부여하셨다. 왕자나 공주나 재벌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위,,, 그 권위가 땅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 속에 묻히고, 함몰되어 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믿는 자’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꾸준히 믿음을 지키는 자라는 뜻이다. 잘 나갈 때나, 어려울 때나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자신이 세상적으로 아무리 비참한 처지에 떨어져 있을 때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나는 그분의 자녀다! 나의 삶이여, 나의 믿음을 흔들지 말지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믿음의 자세다. 어려울 때 비굴해지지 않고, 여유가 있다고 교만해지지 않으며, 굳세고 의연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믿음이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지속적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받은 자들의 모습이다. 그 권세는 이미 자녀들에게 주어진 것이다.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직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 즉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권세다. 이건희의 아들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국 황태자라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왕의 자녀나 재벌의 자녀를 조금도 부러워할 이유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를 부러워해야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을 보며 살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을 보며 산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갇혀 사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보이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 너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손을 굳게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당당함과 위엄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결코 세상 앞에 주눅이 들지 않는다. 돈이나 세상적 신분이나 권력 앞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세상적인 것들, 돈과 부귀영화와 세상적인 지위에 마음이 끌리고, 그 앞에서 비굴해진다. 엘리야 시대 때 모든 이스라엘이 다 바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알이란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세상의 권력과 유혹 앞에 모두 엎드린 것이다. 오늘날의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바알을 숭배한다. 세상의 돈과 권력과 유혹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진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담대함과 당당함과 권세를 보기 힘들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다. 예수님께서는 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 엄한 고난과 고통과 모욕을 당하셨나,, 도대체 창조주께서는 왜 나를 위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셨는가,,, 하나님의 이렇게 엄청난 사랑과 은혜와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나님에게 있어서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내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자기 물음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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