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배자가 됩시다 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참 예배자가 됩시다 <느 8:1-12>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프랑스에서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인가?’에 관한 통계조사를 한 결과, 첫 번째는 단연 ‘엄마(maman)’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아빠’가 아니라 ‘왜(pourquoi)?’였습니다. 이 ‘왜?’라는 질문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이 “왜?”라는 질문을 꼭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예배 그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이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하는 것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예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요 기쁨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지으신 백성인데, 그 목적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예배하라고 부르신 자들입니다. 바른 성도들은 모두 예배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참 예배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4가지로 은혜나누길 원합니다.

1. 참 예배자는 예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모여서 예배하는데 그들은 선지자 에스라에게 한 가지 간절한 청을 합니다.“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이들이 간절히 청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과거 광야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우리에게 물을 주시오, 우리에게 고기를 주시오” 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가져다주세요.”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 예배자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 선지자에게 다른 걸 원하지 않고 말씀을 원했고 하나님을 원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고 예배를 사모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고난과 고통을 받기전 그들은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70년의 고난과 포로생활을 겪고 보니까 이제는 예배하기를 하나님 말씀듣기를 원한 것입니다. 지금 혹시 내가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하나님을 원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2. 예배를 예배되게 해야 합니다. 

‘예배를 예배되게 한다.’는 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가 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가치를 뜻하는 worth와 신분을 의미하는 ship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worship은‘가치를 어떤 대상에게 돌리다’의 의미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려 드리는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1절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렸는가 볼 수 있습니다. 1절 중간에 ‘일제히’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모든 백성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수문 앞 광장에 정해진 시간에 모인 것입니다. 이어 3절에 보면 이들이 일제히 모여 예배드린 시간이 새벽부터 정오까지 장장 6~7시간을 예배했는데도 말씀을 보면 흐트러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시간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5절 말씀을 보면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들이 일어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그 자리에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다 일어선 것입니다. 또 6절은“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기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자 백성들이 “아멘, 아멘”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 일제히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배의 관객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2) 예배는 설교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3. 설교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시간입니다. 

설교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려면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7절 마지막과 8절 사이를 보면“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말씀을 들을 때 깨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깨닫는 것이 중요한데, 깨달음은 생각의 변화를 의미하고 그것은 인생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9절은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백성이 다 울었다고 말합니다. 깨달으니 감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4. 예배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 기쁨보다는 슬픔이 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체험할 때, 비로소 내가 보이는데 그때 나의 추함이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슬픔이 본문 속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었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나니 자기들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고 소망이 없어 그들은 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9절에서 10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주일이 바로 이런 날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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