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천국의 노를 젓는 사람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35 > 천국의 노를 젓는 사람들

정원교회 0 3190


어려서는 의사라는 직업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의사가 되었고, 아내와 함께 개인병원을 짓고 나서는 평생 의사를 하다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이민을 왔다. 이민 와서는 칠 년 간 양모이불 제조업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다. 목사가 된다는 것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젊어서 한때 신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든 적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목사가 되려는 생각까지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십이 넘어서 뒤늦게 목사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여태껏 내 생각, 내 뜻대로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언제나 내 생각, 내 뜻대로 살아 왔지만, 정작 생각도 해보지 않은 엉뚱한 길로 달려온 셈이다.밤하늘에 보이는 무수히 많은 별들,, 저 별들은 자기가 원해서 그 자리에 있을까? 아니면 우주가 생기다 보니, 우연히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일까,,, 우주의 그 많은 별들도 어쩌다 보니 그 자리게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질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흘러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오늘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인도하시고,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기를 택정하시고 부르셨다고 했다(갈 1:15).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고백이다. 바울은 오늘날 터키에 해당되는 소아시아반도의 다소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지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방문화와 언어를 배웠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이방인의 땅에서 태어나서부터 현재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처럼 어느 시점에 가서는, “아,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우연이란 없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교회,,, 교회에 모인 사람들,, 그들이 어떤 식으로 교회에 나왔든,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현재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다. 각자 자기 뜻대로 교회에 나온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그 걸음을 인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뜻이 있다. 성도들에게도,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이 있다. 부르신 뜻이 있다는 말은,, 부름 받은 자들에게는 부여 받은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뜻이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성부께 드린 기도문이 요한복음 17장이다. 

대제사장으로서 이 세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위해 하신 기도,,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을 위한 기도다. 그런데 주께서는 이 간절한 기도에서 제자들이 하나가 될 것을 네 차례나 언급하시면서 유독 강조하셨다(11, 21, 22, 23절).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세상에 남아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에게 유언처럼 하신 기도,, 그 기도에는 그들을 향한 주의 간절한 바램이 담겨있다.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 그들의 모임이 교회다. 그 안에는 각기 다른 길을 따라 현재의 위치까지 인도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이도 다르고, 자라난 배경도, 부르심을 받은 때도 다르지만, 현재의 자리에 불러모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먼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가 되는 데 있다.

세상과 교회는 같은 시대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두 세계다. 기본적으로 인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와 신본주의가 지배하는 전혀 다른 두 세계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있는 배와 같다.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사상,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세상이라는 거센 파도를 뚫고 함께 힘을 모아 한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어 나가야 한다. 이때 배가 거친 바다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배에 타고 있는 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바로 말씀이다. 여기에 교회의 사명과 책임이 있다.  

오늘날 교회들은 바른 방향으로 노를 잘 저어가고 있는가,, 혹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의 물이 교회라는 배에 밀려들어와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심과 거듭남과 성화와 영생은 구원의 중심내용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보다는 어떻게 하면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주관심사가 되었다. 영생보다는 현세가 중요하고, 하나님보다도 내가 중요하다. 부르신 이의 뜻보다 부름 받은 자의 뜻이 중요하다. 

믿음이란 철저하게 하나님께로 귀속되는 것이다. 삶의 중심축이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지는 기형적인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인간중심주의라는 세상의 풍조가 온갖 형태의 그럴 듯한 모습으로 교회에 밀려들어와 있다. 

주께서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5, 16)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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