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의로우신 아버지여,,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39 > 의로우신 아버지여,,

정원교회 0 2635

주께서는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셨다(요 15:2).

성도란 예수라는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같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포도라는 열매를 맺고, 다른 나무에 붙어있으면 다른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열매를 맺고,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열매를 맺는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인격과 성품과 삶의 모습이 자신이 세상에 속한 사람인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인지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예수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잘못하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란 어떤 불의나 죄도 받아들일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어떤 불의, 어떤 죄도 용서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주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드리신 기도인 요한복음 17장의 끝부분에서 ‘의로운 아버지여’라고 부르짖으셨다(25절). 주께서는 아버지의 의로우심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이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이제 아버지의 의를 나타내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의를 행하소서,,, 모든 불의와 죄에 대한 아버지의 진노의 심판을 행하소서,,, 이 목적을 위해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의를 행하시되,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죄에 대해서 아버지의 진노를 나타내지 마소서,, 대신 저에게 아버지의 의를 나타내소서,, 저에게 아버지의 진노의 심판을 행하소서.”

의로우신 아버지여,,, 뜻을 알고 나면 가슴이 매어오는 아버지를 향하신 주의 부르짖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불의한 자요,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은 우리 죄인들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임하였다. 오직 주님 홀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내셨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와 심판에서 구원을 받아 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은 죄에 대해 아무 값도 치른 것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불의한 자요,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할 일도 없고, 죄 사함을 받을 일도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도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신 죄에 대한 심판과 그 은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임할 영원한 심판이다.

이에 반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불의한 자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나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십자가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아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 대한 징계는 받지 않는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으심으로써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든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이제 죄인들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으신다. 죄를 묻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다.성도들은 이렇게 해서 의로우신 아버지의 의로운 자녀들이 된 것이다. 도무지 받아들일래야 받아들일 수 없는 자들을 자녀로 받아주시되, 하나님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 받아주셨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되어 성도들 안에 흐르고 있다. 

주의 피로 보여주신 아버지의 이러한 사랑은 결코 약해지는 법도 없고, 취소되는 법도 없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나타난 아버지의 의로우심이며, 사랑이다. 아버지의 의로우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성도들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말하자면, 가지가 나무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만약 가지가 나무를 붙들고 있다면, 그 가지는 불안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가지가 약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떨어져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나무가 가지를 붙들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무가 죽지 않는 한, 그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떨어져 나갈 일이 없다. 

무슨 말이냐,,, 일단 예수를 믿어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가 된 성도들은 결코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그들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예수에게 붙어있는 가지는 예수라는 열매를 맺고, 세상에 붙어있는 가지는 세상의 열매를 맺는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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