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묵상 삶에 찾아오는 몸살,,,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묵상 <144 > 삶에 찾아오는 몸살,,,

일요시사 0 2348


봄이 왔지만, 아직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고, 일교차도 크고 해서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감기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다. 감기,,, 안 걸리면 좋겠는데, 감기 안 걸리고 살 수는 없다. 

인생에 찾아오는 감기몸살도 있다. 살다 보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인생의 감기몸살을 여러 차례 앓게 된다. 이민을 오게 된 것도 사실은 인생에 모진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 몰아 닥치는데, 어찌나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환멸을 많이 느꼈다. 이 나라에 정의라는 것이 있는지,, 에 대한 환멸이었다. 솔직히 의사라는 직업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한참 잘 나가고 있는 상태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당시 삶의 몸살이 어찌나 심했던지, 크게 망설이지 않고 한국을 떠나 이민을 왔다.

이민 와서 사업이라고 자그맣게 칠 년 동안 해보았는데, 사람들이 돈 앞에서 얼마나 비겁해지고, 또 악해질 수 있는지를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또 한 번의 몸살을 앓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몸살을 앓으면서 인생의 수레바퀴가 굴러갔는데, 그 목적지가 교회일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살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인생의 몸살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사실 의사를 그만둘 때는 내 인생에 왜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닥치나, 왜 내게는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나 하고 속도 많이 상했었다. 계속 병원을 했으면 부도 많이 축적하고, 지금쯤 여행도 다니고 하면서 인생을 여유롭고 신나게 즐기고 있을 텐데,,, 

그런데 지금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고 있다. 세상의 죄악에 빠져있고, 아무 자격도 없는 사람을 목사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몸살을 앓게 하셨던 것이다. 지금도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계속 하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인생의 매를 들어서라도 인도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안에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삶에 간섭하시고, 주권적으로 인도해오셨다. 과거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었던 것처럼, 현재의 상황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미래의 주인이심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갈 길도 예비해 놓으셨고, 예비해 놓으신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살면서 앓게 되는 인생의 몸살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감사함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승리로 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이란 설사 불행한 일이나 고난과 같은 인생의 몸살을 앓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승리자들이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큰 근심에 사로잡혀 공회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 하였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로마인들에게 땅과 민족을 빼앗기게 될까 걱정하며,, 그러나 속 마음은 자신들의 지위와 기득권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며,,,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예수 한 사람만 죽으면 된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유익하다” 라고 간교한 계책을 제안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게도 가야바의 사악한 말 가운데도 임하고 있었다.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서는 가야바의 사악한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고 계셨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가야바의 사악한 말이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예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가야바의 경우처럼 인간의 악에 대해서 더 큰 은혜로 역사하시면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시다. 

죽어 무덤에 누워있던 나사로는 죄와 사망이라는 어둔 무덤에 갇혀있는 인간들을 상징한다. 영혼이 죄로 뭉그러지고 썩고 부패해서 악취가 진동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다시 살아날 수도 없고, 절망 가운데서 모든 것이 끝난 자들이다. 

가야바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그 후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사건이 세계 곳곳에서 무수히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죽은 나사로들이 살아났던 것이다. 우리도 살아났다. 우리는 모두 결코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죄와 죽음이라는 무덤에 갇혀있던 자들이다. 죄와 사망의 어두운 무덤에 갇혀있던 자들이 의와 생명과 빛의 세계로 나오게 된 것이다. 죄로부터의 해방이며, 절망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가야바의 악함을 통해서도 인류구원이라는 더 큰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승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의 승리를 말한다. 성도들의 삶 가운데 겪게 되는 어떤 악이나, 억울함이나, 불행이나,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 안에서 겪는 몸살이다. 

무덤까지 찾아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이시다. 주님 앞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도 없고, 모든 것이 끝장난 상황도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 안에서는 오직 악조차도 선으로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승리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겪는 실패는 잠시 겪는 인생의 몸살일 뿐, 우리에게는 더 큰 승리가 예비되어 있다. 하나님의 승리는 곧 성도들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 125:1)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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