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 5:1-9

기독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요 5:1-9

일요시사 0 2086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는 한 연못입니다. 이 연못에는 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어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많은 병자들이 이곳에 몰려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연못의 이름인 ‘베데스다’의 뜻이 ‘자비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가면 자비와 긍휼을 얻을 것 같았기 때문에 병자들이 모여왔습니다. 또 하나는  연못에 내려오는 전설 때문이었습니다. 가끔 연못의 물이 움직이는 때, 그것이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못이기에 많은 병자들이 연못가에 모여 들었던 것입니다. 병자들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연못이 움직이는 때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문의 병자도 이 연못가에 누워 있은 지 무려 38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베데스다 병자들의 모습은 우리 인생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열심히 찾아가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인생의 베데스다입니다. 이 인생의 베데스다는 얼핏 보면 거기에 성공과 행복이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경험해 보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곳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우리 인생의 참된 변화와 역사는 어떤 장소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길, 명성과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거기에 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38년 된 병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 신앙에서 어떻게 해야 치유와 변화와 기적을 이룰 것인지 세 가지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 낫고자 하는 마음, 즉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바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입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과연, 지금 네 마음에 병을 고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병자가 가진 아주 중요한 문제의 핵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가 38년간이나 아무런 치유나 변화도 경험하지 못하게 한 마음의 심각한 장애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속에 둔화되고 사라진 마음의 열망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이 연못에 왔을 때의 마음은 ‘내가 이곳에 왔으니 반드시 나으리라’는 열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비록 몸은 아팠지만, 그 눈은 기대감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망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38년이 지나면서 낫고자 하는 열망은 고사하고, 일말의 기대감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거길 떠나지도 못하고, 그냥 누워 있는 것입니다. 몸은 연못가에 누워있는데, 병을 고치겠다는 기대와 열망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바로 마음이 문제입니다. “네 안에 과연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내 마음에 주님을 열망하는 마음, 내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거룩한 장소에 가 있어도, 아무리 소문과 명성이 뛰어난 장소에 있을지라도 그건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열망이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 은혜 받고자 하는 마음,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이 열망이 다시 뜨겁게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2. 실패의 책임을 타인이나 환경에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셨을 때 “예 제가 낫고자 합니다.” 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기가 38년 동안이나 왜 병을 고치지 못하고 이렇게 누워 있는가?’게 대한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1) “나에게는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7절a) 이 구절을 영어 성경에는 “I have no one to help me”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의 대답은 “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내가 못에 들어가도록 도와줄 사람이 내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렇게 고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 말입니다. 

우리도 보면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고 또는 불행이나 실패를 겪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에게 없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게 없는 것만 생각하고 내게 없는 것을 더 크게 여기다 보면 그것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왔고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누가 그랬습니까? 38년 된 병자가 그랬습니다. 

2)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7절b) 쉽게 말해, 오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에덴에서 죄를 짓고 나서 생긴 가장 첫 번째 특징이 뭔가 하면 나의 불행과 나의 실패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나의 불행과 나의 실패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참 신앙인의 모습은 시간이 갈수록, 세월이 갈수록, 신앙의 연수가 더해 갈수록 예수님 얼굴 외에는 다른 사람,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신앙입니다. 우리들 삶의 실패나 책임을 환경과 타인에게 돌리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적잖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라는 게 사실 누워 있어봤자, 붙들고 있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도 병자는 이 자리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거라도 놓치면 병에서 나을 작은 희망마저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그는 한 번도 자리를 들어볼 생각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자리를 ‘들라’는 것입니다. 이건 병자에게 너무나도 파격적인 명령입니다. 이 자리를 들고 옮기면 내 자리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자리를 들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그 뒤에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들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들고 걸어가라는 것은 건강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리는 앓아서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이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건강해서 힘차게 걸어 다니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입니다. 내 힘으로 능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자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내 힘으로 능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자리에 연연하거나 다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죄로 인해서 앓아누워 있는 우리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이 세상을 능히 걸어가는 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부분적으로 보고 어느 부분에는 심혈을 기울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연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인생의 전체의 줄거리를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오늘 우리에게 때로는 내가 연연해하고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하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마치 오늘 예수님께서 38년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실 때 믿음으로 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베데스다에 누워있는 병자가 아니라 능히 우리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인 것을 기억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