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묵상; 행악자가 되시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묵상; 행악자가 되시다,,,

일요시사 0 2129
유대인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간 때는 유월절 새벽이었다. 유월절 기간 중에는 죄인을 재판하거나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예수를 죽이기는 해야겠는데 자신들의 깨끗한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이방인의 손으로 예수를 죽이게 하기 위해서 이른 새벽부터 빌라도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들은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다. 

주께서는 이들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2, 44) 

형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는 일에 열심이었고,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더 구하였던 것이다. 마음이 더럽다는 것이 꼭 악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가득한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 세상의 영광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마음이다. 
형식적인 종교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마음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지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앞날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상태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이 우리의 욕심으로 더러워질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순결한 마음이 더럽혀지고 있지는 안은 지,, 두려워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즉 신성모독죄였다. 그러나 빌라도에게 말한 예수의 죄목은 행악자다. 행악자란 문자 그대로 악을 행하는 자라는 뜻이다. 빌라도가 너희 법대로 하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법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유월절에는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빌라도의 손으로 예수를 죽이려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예수를 로마식으로 죽여주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행악자들에 대한 로마식 처형법은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십자가의 처형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고, 예수를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가장 잔인하게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예수를 행악자로 몰고 간 이유였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다. 그들이야말로 행악자들이었다. 성경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행악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으로 여호와가 이같이 말한다. 네 상처는 치유될 수 없으며, 네 부상은 심각하다. 네 송사를 변호해 줄 자가 아무도 없으며, 네 상처를 치료할 약도 없다. 너를 사랑하던 자들이 모두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할 것이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원수를 치듯이 너를 치고 잔인한 자를 징계하듯이 너를 징계하였기 때문이다. 네가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네게 이 일들을 하였으니, 네 고통은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렘 30:12-15)

이스라엘 백성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은 했지만,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이방신인 바알도 섬겼다. 바알은 인간의 욕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상이다.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더 섬겼던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늘 악을 행하는 행악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행악자, 이스라엘을 이방 나라인 바벨론을 들어서 처참하게 치셨다. 이때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던지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애 4:4)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애 2:20) 

젖먹이가 먹을 젖이 없고, 어린 아이들이 먹을 음식이 없고, 어미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먹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전에서 이방인들의 칼에 죽어갔다. 행악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준엄하다. 행악자들이 받은 상처는 치유될 수도 없고, 치료할 약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다. “여호와의 말이다. 진실로 내가 너의 건강을 회복시키며 네 상처를 치유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너를 '쫓겨난 자' 라고 부르며 '아무도 찾지 않는 시온' 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렘 30:17, 22)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는 자, 즉 행악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악자들을 죄와 죄의 상처에서 치유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예수께서는 행악자들이 달리는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의 피만이 행악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써, 행악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은 진정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다. 

주께서 행악자가 되어 행악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행악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주께서는 기꺼이 행악자가 되셔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의 피,,, 그 길 말고는 행악자들을 구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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