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NZ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기독교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NZ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일요시사 0 9290
민 21: 5-9, 히 12:1-3


이제 뉴질랜드는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한국은 반대로 가을 추수가 끝난 상태입니다. 여러분도 가을에 노랗게 익은 벼가 쫙 펼쳐진 황금 들판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황금들판을 볼 때 가장 남다른 사람은 농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황금 들판이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수고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인생의 마지막 골인 점을 생각하며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평생을 그 혹독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어려움을 이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길을 기쁘게 걸어 갈 수 있었을까요? 사도바울은 초대교회 최초의 집사인 스데반이 예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예수님을 증언하다 마지막에 돌에 맞아 죽었을 때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마지막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광경은 평생 바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바울 역시 인생의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스데반처럼 바울처럼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사람들 되기를 바랍니다. 


1. 죄를 벗어 버리라 

올림픽에 나오는 육상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은 0.01초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서 최첨단 소재로 아주 가볍게 만들어진 운동복입니다. 고대 1세기의 달리기 선수들은 경기할 때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달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주를 하는 사람은 가벼워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 마디로 영적인 경주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곧 믿음의 경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갈 때 맹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분명한 목표가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마지막에 하나님의 상급을 받기 위해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죄를 벗어 버리는’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말씀 대로가아니라 내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죄를 벗어야 할까요?

1) 죄는 무겁기 때문입니다. 죄는 우리 인생을 무겁게 합니다. 어떤 분들은 “죄, 뭐 그 까짓것 지어도 그만이지, 그게 뭐 무슨 영향이 있을라구?” 생각합니다. 그러나  죄는 무시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는 내가 애써 부인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죄를 벗어야 합니다. 

2) 죄는 얽어매는 것이기에 죄를 벗어야 합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치 않는 것은 그냥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얽어매는 것입니다. 

3) 죄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우리 인생에 불뱀을 가져옵니다. 오늘 민수기 말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는 곳에 불뱀이 출몰했습니다. 이 뱀은 굉장히 맹독성이라 물리는 자마다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불뱀이 왜 나타났는가?’ 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엄청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와 같은 원망과 불평의 죄로 인해 불뱀이 나타나서 그들을 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린 백성들은 죽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교훈은 죄는 우리 인생에 나를 물고 나를 쓰러뜨리고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불뱀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만 합니다. 


2.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만나는 하늘의 양식입니다. 만나는 기름 섞인 꿀맛이 나는 과자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만나를 먹었을 때 그 놀라움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그런데 기막힌 사실은 그 하늘의 양식에 이스라엘 백성이 싫증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들이 하나님께 그토록 험한 말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을 합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에서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싫증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하늘의 만나를 먹기도 하고 경험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찬양을 하는데 마음이 울컥하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하늘의 만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만나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찾아옵니다. 바로 싫증입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에서는 싫증의 삶과 정 반대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데 그것은 바로 인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앞에 놓인 이 믿음의 경주를 무엇으로 감당하라고 합니까? 바로 인내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내가 중요할까요? 

1) 인내가 있어야 열매를 맺고, 인내가 있어야 믿음의 경주에서 골인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내가 없으면 지금까지 노력한 게 다 헛수고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견딤이 있어야 은혜의 알이 들어차고 축복이 알이 들어차는 것입니다. 

2) 사랑의 핵심이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주 연락하고 대화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핵심, 사랑의 정수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인내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장은 고전 13장입니다. 사랑장에서 “사랑은... ” 하면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특징이 바로 “오래 참고”입니다. 바로 인내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내하는 것이 오래 참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바라보라 

민수기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불뱀이 출현했고 그 불뱀으로 백성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이 뱀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십니다. 불뱀을 만들라는 것은 놋, 구리로 뱀의 형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오늘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불뱀에 물렸어도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 놀라운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들이 죄를 짓고 죽게 된 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불뱀에 물려 죽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우리가 죄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존재이지만 우리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나무 위에 높이 달리신 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이 원치 않는 인생의 불뱀으로 인해서 쓰러져 있습니까? 
인생의 불뱀에 물려 괴롭고 고통스럽습니까? 우리 인생의 놋뱀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예수를 바라보며 사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내 영혼을 휘감고 있는 모든 죄의 사슬, 의심의 사슬, 불안과 염려의 사슬이 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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