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믿음은 환난 중에 더 빛납니다 삼하 16장 9-14절

기독교


 

참 믿음은 환난 중에 더 빛납니다 삼하 16장 9-14절

일요시사 0 15937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주로 믿는 믿음은 매우 귀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환난의 때입니다. 평안하고 좋을 때는 우리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는 참 믿음은 빛을 발합니다. 오늘은 참 믿음과 환난의 관계에 대해서 함께 세 가지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환난은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환난을 당하는 때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도 환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후에 국가적 영웅이 됨과 동시에 사울 왕의 표적이 되어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다시 한 번 인생 최대의 환난을 맞이합니다. 반역과 배신의 환난입니다. 나라에 쿠데타가 일어나 다윗 왕이 궁을 도망쳐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나 다윗의 마음이 너무 괴로운 이유가 반역의 주체가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왜 믿음의 사람이 이렇게까지 환난을 당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여기셨습니다. 정말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을 보면서 가지게 되는 질문이 “아니,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왜 이런 환난을 당하는가?”입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다윗과 동일합니다.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살다 보면, 시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찾아옵니다. 이상하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면 없던 어려움이 찾아오고 환난을 당합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낙심하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환난이라도 하나님이 없이 당하는 환난과 하나님을 모시고 당하는 환난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없이 당하는 환난은 그냥 환난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환난이 오면 시험 거리가 되고, 환난이 오면 불평이 나오고 결국에는 환난으로 인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환난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환난은 감사의 동기요 감사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요? 세상에서는 불평과 원망 거리일 수밖에 없는 환난과 역경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는 얼마든지 감사 거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참 믿음을 가진 자에게 환난은 하나님의 키질입니다. 

키는 대나무 같은 것으로 앞은 평평하게 뒤는 우묵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키 안에 곡식을 넣고 키질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 곡식을 까분다고 표현합니다. 키질을 하면 그 안에서 곡식들이 널뛰기를 합니다. 그래서 알곡은 안으로 들어오고, 쭉정이는 밖으로 나가거나 바람에 불려갑니다. 한 마디로 키질을 하면 할수록 함께 섞여 있던 알곡과 쭉정이가 서로 멀어지고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에도 이런 키질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키질이 바로 환난입니다. 역경입니다. 키질을 하면 할수록 알곡과 쭉정이가 점점 나뉘는 것처럼, 환난이라는 키질도 하면 할수록 선은 더 선이 되어서 안으로 들어오고, 악은 더 악이 되어서 밖으로 나갑니다. 이것이 환난이라는 키질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함께 섞여 있고 모호하던 선과 악이 점점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나라를 뒤엎고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다윗은 왕궁을 쫓겨나게 되었고 백성들은 다윗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환난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환난은 동시에 하나님의 키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당한 환난으로 지금 키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환난이라는 키질로 그동안 숨어 있어서 보지 못했던 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먼저 시바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시바는 사울의 손자이고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종입니다. 삼하 9장에 보면, 다윗이 이 므비보셋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요나단에게 받은 은혜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을 찾아서 은총을 베풀고, 땅을 하사하고, 심지어는 자기 식탁에서 먹게 하는 일을 시바라는 종에게 시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니까 이 시바가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지금 반역이 일어나 막 피난을 가는 다윗에게 시바가 음식을 가득 가지고 와서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다윗은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때 다윗이 “너의 주인 므비보셋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고, 시바는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3절)라고 대답합니다. 
시바의 이 대답이 소름끼치는 것은 시바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바라는 종은 다윗이 피신하는 틈을 타서 거짓으로 주인을 모함하고 주인의 땅을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에게 오늘 환난이 찾아오니 그동안 가만히 숨어 있던 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5절에 시므이란 자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다윗이 환난을 당할 때 다윗 왕을 향하여 계속 저주를 퍼붓고,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욕까지 합니다. 여러분, 지금 다윗이 당한 환난이 아니었다면 시므이란 자는 아마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당한 환난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당한 환난이라는 키질을 통해서 악이 다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데 이렇게 환난을 주시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의인의 환난은 하나님의 키질입니다. 의를 의가 되게 하고 선을 선이 되게 하고 악을 악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키질 그러므로 의를 행하다가 환난이나 역경을 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환난은 참 믿음을 드러나게 하고 의를 드러나게 하고 선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3. 참 믿음은 환난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아무리 다윗이 아들의 반역으로 궁을 떠나 도망을 가는 입장이라도 그는 왕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로라하는 장수들이 호위하고 군사들도 있습니다. 나아가 다윗에게는 아직도 다윗을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시므이는 다윗에게 저주를 퍼붓고, 돌을 던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왕정시대에 시므이와 같은 사람은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므이의 행동을 보고, 다윗의 장군 아비새가 분개하여 나서서 그를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지금 다윗은 반역이 일어난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일개 백성에게 모욕과 수치를 당한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과연 다윗은 이 부당하고 참을 수 없는 이 일을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10절에서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의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은 시므이가 아무리 자신을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욕을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다윗의 위대한 면을 보십니까? 다윗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므이의 모욕적인 언행 속에서 인간 시므이를 보고 분노하고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냐? 하나님이 내게 책망하심이 아니냐?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난이 다가올수록 다윗을 바라보며 더 믿음의 끝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환난 속에서 더 빛나는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도 앞이 캄캄해지고 암흑과도 같은 환난과 절망의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참 믿음은 믿음의 페이스를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지금 내 상황이 캄캄하고 암흑이고 환난과 절망의 때라 할지라도 예배의 페이스, 기도의 페이스, 말씀의 페이스가 흐트러지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환난 중에 더욱 더 환하게 빛이 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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