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는 해와 같은 삶의 축복 삼하 23:1-7

기독교


 

돋는 해와 같은 삶의 축복 삼하 23:1-7

일요시사 0 2849
새해를 맞이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해돋이 장소입니다. 어떤 이들은 해돋이를 단 몇 분이라도 보기 위해 몇 시간을 운전해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 돋는 광경을 보고자 하는 것은 돋는 해가 갖는 독특한 매력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인생 말년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시기로 보면 지는 해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처지와는 정반대의 삶을 노래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4절)다고 노래합니다. 그렇다면 돋는 해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갈수록 강성해지는 삶입니다. 자연의 이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약해지고 낡아집니다. 그런데 이 같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이치입니다. 고후 4:16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이치요 신앙의 이치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육신 곧 겉 사람은 날마다 낡아질지라도 그 안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강건해진다는 것입니다. 

2)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삶입니다. 우정이나 사랑을 말할 때 냄비와 뚝배기에 비유합니다. 냄비와 같은 우정과 사랑은 쉽게 달아오르나 식기 마련입니다. 뚝배기와 같은 우정과 사랑은 한번 달구어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나, 한번 뜨거워지면 오래 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뚝배기와 같이 나중이 더 뜨거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 미래와 소망이 있는 삶입니다. 돋는 해를 보면서 사람들이 갖는 것이 바로 미래와 희망입니다. 지금은 비록 작고 약하지만 저 돋는 해처럼 자신의 삶도 크고 강해지리라는 미래와 희망입니다. 이 미래와 희망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 때 해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돋는 해와 같은 삶의 축복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세 가지 은혜 나누겠습니다. 


1. 돋는 해와 같은 삶의 비결은 하나님이 세워주심입니다.

돋는 해의 삶, 점점 밝아지고, 커지고, 강성해지는 삶의 첫 번째 비결은 ‘하나님이 세워주심’입니다. 
다윗은 본문 1절에서 자신을 가리켜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으로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다윗이 말한 “높이 세워진 자”는 다윗의 교만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세워주심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워 주셨기 때문에 제가 돋는 해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표현은 옳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떻게 해야 돋는 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돋는 해와 같은 삶, 떠오른 해와 같은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로 행할 때 돋는 해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든지 공통적인 바람은 인생에 어려움과 위기가 찾아오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기를 원하는 것보다 더 성숙한 신앙의 자세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삶일까요?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 두려운 걸 알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은 하나님 두려운 것을 모르지만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두려운 것을 알고 사는 자들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3절)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소년이었을 때,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입니다. 그런 다윗이 평생 두려워하고 경외했던 분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경외했습니다. 

2) 공의로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의 특징은 하나님은 경외함으로 대했고, 사람은 공의로 대했습니다. 다윗의 군대 장군 요압은 다윗이 자신들을 대적하던 적군의 장수들을 받아주려고 할 때 번번이 그 장수들을 다 살해를 합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다윗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요압의 행동을 감정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람을 공의로 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감정에 따라 사람을 해하고 죽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신앙인은 감정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있습니다. 그 공의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3. 돋는 해의 삶은 신실한 도움의 손길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삶은,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는 삶이 아닙니다. 혼자가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많이 만나는 것입니다. 본문의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고,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부강한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본문 8절에서는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8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다윗을 곁에서 도운 용사들의 명단과 그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용맹함과 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성실하고 충성으로 다윗을 따랐습니다. 10절에 엘르아살이란 용사가 나오는데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과 싸웠습니다. ‘손이 칼에 붙기까지’라는 말은 아주 오랫동안 칼을 잡은 나머지 손이 그냥 잡은 채로 굳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에게는 이렇게 죽기까지 책임감을 가진 용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을 사랑하고 충성된 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의 헌신과 충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고귀함을 알아주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나라, 다윗의 공동체는 그냥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끈끈하게 믿어주고 따라주고 신뢰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또 알아주고 인정하고 아끼고 귀하게 생각하는 다윗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공동체가 어찌 돋는 해처럼 강성해지지 않겠습니까? 돋는 해의 삶은 신실한 도움의 손길을 만나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신실한 도움의 손길을 만나 돋는 해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NZ광림교회 정존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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