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묵상; 주의 은혜를 입은 자들,,,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묵상; 주의 은혜를 입은 자들,,,

일요시사 0 3147
주께서 인간세상에 찾아오셨다. 성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세상에 찾아오신 목적은 인간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주의 구원사역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지만, 형벌은 빌라도에게 당하는 수난에서 시작이 된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노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 6) 

주께서 가시에 찔리시고, 채찍에 맞아 등살이 패이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형벌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구원의 역설이요 구원의 무게다. 우주보다 무거운 구원의 무게다.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모욕은 육신의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욕이다. 그런데 그 모욕을 손수 담당하셨다. 그 구원의 무게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일방적이고, 압도적으로 임하는 주의 은혜다. 

그런데 이러한 주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누구인가? 주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일까? 아니면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일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요 1:29). 여기서 ‘세상 죄’란 무슨 뜻일까? 주께서는 세상의 모든 인류의 죄를 지셨다는 뜻일까? 주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형벌을 받으셨다면 세상의 모든 인류는 다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인류의 죄와 죄에 대한 심판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호소력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내용들이 성경에는 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지구 상의 그 많은 인류 중에서 하필 유대인들만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나,,, 지구 위에 살다 간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다 지옥에 버려졌나,,, 우리 조상들도 다 지옥에 버려졌나,,, 부모가 예수를 모르고 돌아가셨는데, 지옥에 버려졌나,,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아직 예수를 모르는데, 그들은 모두 지옥에 던져지나,,,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는 없는 것일까? 모든 인류가 다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보편구원론이라고 한다. 보편구원론이 매력적인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불편함을 일거에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보편구원론,,, 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다. 1974년 2월 20일에 필리핀의 정글에서 오노다라는 일본군 소위가 종전사실을 모른 채 정글 속에서 홀로 삼십 년이나 지내다 발견되었다. 예수의 구원사건도 이와 같다. 무슨 말이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심으로써, 모든 인간들은 죄와 심판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오노다 소위처럼 정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바로 자신들이 구원받은 소식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승리의 선포요, 인류구원의 선포다. 십자가 사건은 범우주적 사건이며, 초 시간적 사건이다. 따라서 창세이래 모든 인류는 구원을 받는다. 

20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하나님께서는 한 분 예수 그리스를 선택하시고, 그분을 십자가에서 유기하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창세 이래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 값을 치르게 하셨다는 주장이다. 결국 예수 안에서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로마서 5장은 아담의 범죄와 새 아담으로 오신 주의 은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 5:15) 아담의 범죄의 파괴력이 모든 인류에게 미쳤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도 역시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는 뜻인가,,, 

고린도전서는 15장 22절에서 더 담대하게 선언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 죄로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 즉 구원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쉬운 구절이다. 예수의 구원의 능력이 아담으로 인한 죄의 능력보다 작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나,, 결국 모든 인류는 다 구원받게 된다는 뜻일까? 아담에 속한 사람, 즉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죄로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죽는다는 말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버림을 받은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는 상태가 죽음이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믿고,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이러한 죽음에 던져지지 않고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 로마서 5장도 같은 맥락이다. 

성경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찬국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계 21:27).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구원은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신 것이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이며,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주의 은혜가 살 떨리는 무게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