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삶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54> 삶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정원교회 0 11296

한 해가 또 기울어간다. 하루 해가 지면 하루가 저물고,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새 하루가 시작된다. 이렇게 한 달이 가고, 열두 달이 지나면 한 해가 끝이 난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나면, 어느덧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도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한 평생 살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들, 기뻤던 일들과 슬펐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천상병 시인은 ‘새’라는 시에서, 마지막 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상병 시인은 62년 9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살았다. 서울상대 경제학과를 다닌 시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난했던 시인은 동독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에게 막걸리 값으로 5백 원, 천 원씩 받아 쓴 것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그리고 교도소에서 3개월 동안 갖은 고문과 치욕스러운 취조를 받았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도 갔다 오고 아이도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손놀림과 발놀림도 부자연스럽고, 침이 자꾸 흘러 내려와 입가에는 말라붙은 침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삶의 시련도 그의 마음을 망가뜨리지는 못했다. 

시인은 자신의 비참한 삶을 수용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고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았다. 하지만, 순박하기 그지없는 그의 마음 안에는 외로움이 깊게 배어있었다. 오죽하면 자신의 무덤을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라고 표현했겠는가,,,

 시에서 시인은 죽은 후 한 마리 새가 되어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은 자신의 영혼의 빈 터’에 찾아와 이렇게 노래한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자신은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가 될 것이라고,,, 

시인은 크리스천이었다. 30년 동안 천주교신자로 명동성당에 다녔던 시인은 개종은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12년 동안은 개신교 교회인 연동교회에 출석하였다. 시인은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귀천’이라는 시에서,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자신의 일생을 이 세상에서의 아름다운 소풍으로 받아들인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은 자신의 가난하고, 억울하고, 외로웠던 인생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억울하고 외롭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살았던 시인은 자신의 삶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시인에게 있어서,, 그토록 외롭고 외로웠던 인생도 아름다운 소풍이었던 것이다,,, ‘새’라는 시에서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로 묘사되었던 삶의 마지막이,,, ‘귀천’에서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승화되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인처럼 자신의 삶을 품을 줄 아는 마음이다. 좋은 일은 물론이고, 나쁜 일까지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에 여유, 여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마음의 공간, 여백이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일과 생각으로 마음이 빼곡하게 차 있어서는 마음의 여백을 가질 수 없다. 

시인은 참으로 억울한 고난을 당했으며,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평생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그의 마음은 자신의 삶 가운데 있었던 좋은 일들도, 나쁜 일들도 모두 품고 있었다. 시인은 자신의 억울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아름다운 세상소풍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살아내는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는 각자가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다. 자신의 삶을 품고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아름다운 나라다. 각박하고 빡빡한 마음으로는 삶을 품을 수도 없고,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도, 만들어갈 수도 없다. 

“네 길을 여호와게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분께서 이루신다”(시 37:5)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무거운 짐을 넘겨드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이고, 마음의 여유이며, 마음의 여백이다. 그 여백은 하나님께서 그려나가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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