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참으로 무서운 사랑이야기,,,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55 >참으로 무서운 사랑이야기,,,

정원교회 0 2051
사도신경에 보면, 언뜻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내용이 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살리려고 나름대로 애를 많이 썼던 사람이다. 예수에게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유월절 특사로 풀어주려고 했더니, 유대인들이 바라바라는 강도를 풀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또, 심한 채찍질을 해서 유대인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풀어주려고도 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이 일어날 것 같자, 마지못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다. 

실제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도신경에서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는 이유는 빌라도에게 주어진 권한 때문이다. 빌라도에게는 유대의 총독으로서 예수를 놓아줄 권한도 있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었지만, 그는 민란이 날 것을 두려워해서 자신의 권한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빌라도의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물으신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19장 8절에는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빌라도가 두려워한 이유는 예수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는 유대인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하면서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리 심문해봐도 예수는 죄가 없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계속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자기가 아무리 총독으로서의 권한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극악한 죄인들에게나 집행하는 십자가의 처형을 명령하기란 여간 꺼림직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기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이렇게 간곡히 부탁까지 했다. "당신은 그 옳은 사람에게 아무 관여도 하지 마세요. 지난 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요."(마 27:19)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해오면서 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과는 전혀 다른 아주 비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신경이 많이 쓰이고, 또 마음 한 구석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내까지 이렇게 말을 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이라고 했단 말이야? 

신의 아들,,, 으으으~~~ 빌라도의 두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빌라도는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만 들어도 크게 두려워하였다. 사실,, 신의 아들이 자기 앞에 서 있다고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신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너무 쉽게 부르고 있는 지 모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라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해야 한다. 

어느 인간이 자기 원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뿐인 아들을 죽음에 내줄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크게 죄를 짓고 원수 진 일이 있어서 사형선고를 받고 옥에 갇혀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서 나를 대신해서 그 사람의 아들이 사형집행을 받게 하고, 나를 감옥에서 구해주었다. 게다가 나를 자기 친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호적에 올려서 유산을 물려줄 법적 상속자로 삼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마냥 기뻐만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 사람의 사랑이 자기 자식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원수인 나를 구원해준 너무나 무서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평생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사랑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로마서 5장 10절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신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사랑인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를 영원한 형벌의 감옥에서 구원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단지 감사함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두렵고 떨리는,,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사랑이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의 이야기다. 인간도 아니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시고, 자신의 원수였던 우리 죄인들을 영원한 형벌의 옥에서 구해주시고, 자신의 자녀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을 등록해주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유산으로 물려주신 무시무시한 사랑의 이야기다. 

본디오 빌라도는 단지 자기 앞에 서서 심문을 받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으로도 두려워하였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는 그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쩌면 두려워하지 않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그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사랑인지를 알게 된다. 

교회,, 에클레시아다. ‘~에서 불러내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단어다. 교회는 실로 무서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에서 불러낸 자들의 신앙공동체다. 하나님의 피라는 엄청나고 무서운 사랑으로 세워진 것이 교회다. 교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다(행 20:28)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피다.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 교회는 하나님의 무서운 사랑, 그분의 피로 세워진 하나님의 집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져야 했다.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에는 그 만큼의 무서운 책임이 주어진 것이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