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앙의 집을 세우라 마7:24-27

기독교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앙의 집을 세우라 마7:24-27

NZ광림교회 0 8085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의 집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집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신앙의 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집을 짓습니다. 찬송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은 집을 짓는 자니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집, 신앙의 집을 잘 지어야 합니다. 이 땅위에 사는 집은 아무리 좋아도, 우리가 떠날 때 이 땅에 다 놓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집은 주님 앞에까지 가져갈 수 있는 집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 땅위에 보이는 집보다도 저 하늘에 가져갈 보이지 않는 신앙의 집을 더 견고하게 더 아름답게 더 근사하게 지으시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앙의 집을 세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세 가지로 나누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아무리 집이 편리하고 안락하고 분위기가 멋지다 할지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집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사람”(24)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석 위에 집을 세웠다는 것은 집의 기초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기초에 세워진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짓는 이 신앙의 집의 반석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 반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신앙의 집의 반석이 되어야 튼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 말 모두가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라는 단어만 이름이고 뒤에 그리스도는 직분입니다. 그리스도의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옛날에 구약 시대에 왕이나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온 인류를 죄에서 건지실 구원자,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일종의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신앙의 고백이 우리가 짓는 영적인 집의 반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이 우리 신앙의 집의 반석이 될 때 우리 신앙은 절대로 흔들리거나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깜짝 놀랄만한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 이 고백은 앞서 말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반석이 바로 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신앙의 기초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신앙의 집에는 배움의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건물에서 기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둥입니다. 기둥은 보통 보이지 않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이 좋다고 할 때 인테리어나 눈으로 보이는 것을 통해 집이 좋다, 아늑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숨어 있는 기둥을 찾아서, “이 집이 좋군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집에 있어서 중요한 건 바로 이 기둥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에도 기둥이 중요하듯이 오늘날 우리가 짓고 있는 신앙의 집, 영적인 집에도 기둥이 중요합니다. 이 신앙의 집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가 바로 배움의 기둥입니다. 오늘 말씀 24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이 말을 듣고에서 듣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나의 이 말을 듣고는 귀로 듣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오늘 내가 무엇을 듣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운명까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들어야 신앙의 집이 견고하게 세워지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영혼이 힘을 얻고, 들을수록 영혼이 강건해지고, 들을수록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게 되고, 영적인 기쁨과 감격을 얻게 합니다.

2) “나의 이 말을 듣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무엇보다 이 배움의 기둥이 세워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 신앙의 집이 견고하게 세워지려면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3. 신앙의 집에는 훈련의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주시기 전에 주신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서 시내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40일간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는 돌판을 들고 시내산을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첫 번째 목적은 가르치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 6장에 보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가 강조한 것은 열심히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서 가나안을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야하는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루 속히 축복의 땅 가나안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광야였습니다. 여러분 실제로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헤맨 그 광야는 40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거리를 40년을 헤맸습니다. 그렇다면 이 40년은 헛되고 무익하고 버린 시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 이 40년 광야가 헛되지 않은가 하면 그 시간은 바로 훈련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집을 세우시기 위해서 먼저는 율법을 주셔서 배움의 기둥을 세우시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광야를 주셔서 훈련의 기둥을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도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집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이 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두 기둥, 배움의 기둥을 세우고 훈련의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 삶에 불어 닥치는 무서운 고난과 역경의 바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의지할 때, 우리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신앙의 집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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