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병의 아침 묵상< 160> 사순절에 생각해보는 십자가

기독교


 

채원병의 아침 묵상< 160> 사순절에 생각해보는 십자가

일요시사 0 14644

2월 10일부터 3월 26일까지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로 시작해서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을 말한다. 사순절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제정되었는데, 당시에는 일요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은 하루 한 끼씩 금식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고기를 먹지 않으며, 금욕의 훈련을 하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주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일요일에 부활하셨다. 일요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기 때문에 금식과 회개의 시기인 사순절의 40일에서는 제외했다. 그래서 사순절은 계산해보면 실제로는 46일이 된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40일을 맞추다 보니, 부족한 4일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순절은 항상 수요일에 시작하게 된다. 사순절이 시작하는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첫 수요일에 재를 뿌리며 회개하는 예식을 통해서 사순절을 시작한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왜 40일로 정했을까? 

노아의 홍수 때 40일 동안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비가 내렸다. 40일간의 홍수는 세상의 죄를 쓸어버리고, 즉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40일 동안 음식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모세의 40일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기 위해 정화하고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구출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야 했다.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화하며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으로 갈 때도, 40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갔다. 엘리야의 40일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었다. 주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준비하셨다. 

광야의 40일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본격적인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이러한 성경의 내용들을 살펴볼 때, 40이라는 숫자는 정화와 준비의 기간임을 알 수가 있다. 특히 금욕과 자기절제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경건의 훈련기간이 사순절의 의미다. 그런데 사순절은 부활절 전의 40일이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해 정화하며 준비하는 기간임을 알 수가 있다. 

모든 성도는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는 삶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삶은 하루하루가 영광의 날을 준비하는 사순절인 것이다. 성도는 예수를 주로 믿으며,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라고 한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모두 주의 제자들인 것이다. 사순절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날을 소망하는 가운데 주를 따르는 제자의 도를 훈련하는 기간이다. 성도는 사순절 동안만 주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 살아가는 동안은 언제나 주의 제자들이다. 

주를 따르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다. 흔히들 삶의 무거운 짐이나 고난을 자기 십자가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에게 그 십자가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 되고, 또 어떤 이들에게 그 짐은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는 가운데 영생을 준비하는 과정이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의 이름은 ‘해골’이라는 곳이었다. 히브리 말로는 ‘골고다’ 로마 말로는 ‘갈보리’다. 골고다는 십자가의 형을 집행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갔다. 즉,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십자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였다. 그들의 십자가는 ‘해골’이라는 곳에 자신의 해골을 더 하는 십자가였을 뿐이다. 십자가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십자가였다.

오직 예수가 달린 십자가만이 부활의 십자가였으며, 죽은 자들을 살리는 십자가였다. 예수가 없는 십자가는 단지 고통의 십자가요, 절망 가운데 죽는 죽음의 십자가였다,,,십자가라고 해서 모두 같은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라고 해서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가 없는 십자가는 고통과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십자가다. 예수가 없는 고난은 단지 고통에 불과하며, 절망 가운데 죽어가는 십자가다. 그러나 예수가 함께 하는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는 과정이며, 희망의 십자가요, 생명의 십자가다.

인턴, 레지던트를 서울위생병원에서 했다. 병동이 상당히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언덕길에 있는 숙소로 가려면 5분 정도 걸어서 내려와야 했다. 한 밤중에도 불려갈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 길을 수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그런데 밤중에 병원에서 숙소로 내려오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붉게 빛나는 십자가뿐이었다. 교회마다 첨탑 위에 세워진 십자가들이 붉은 네온사인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온 동네에 가득한 붉은 십자가들을 보면서, 공동묘지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예수가 없는 십자가가 죽음의 십자가이듯이, 예수는 보이지 않고 십자가만 달려있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예수의 십자가가 있어야 살아있는 교회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 예수의 십자가는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십자가다. 성도는 예수의 십자가를 주님과 함께 지고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예수의 십자가다. 그 십자가는 영광의 부활을 준비하는 희망의 십자가이며,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생명의 십자가다.  

채원병목사<오클랜드정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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