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신앙, 막10:35-45

기독교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신앙, 막10:35-45

NZ광림교회 0 2146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교회의 예배나 모임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영광이란 단어입니다. 영광의 뜻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입니다. 그런데 이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는 누구에게 어울리고 합당한 말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어울리고, 하나님께 합당한 말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마지막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잠시나마 그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6:23) 다시 말해 우리 모든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영광 전에 고난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No Cross, No Crown’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십자가가 없었다면,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 없었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주의 영광을 말합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주의 영광은 세속적인 영광(세상적인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로마를 몰아내시고 새 나라를 세우시면 자신들도 한 자리 차지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나의 영광이라 하지 않고 나의 잔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여기에서 잔은 고난의 잔입니다. 세례는 고난의 세례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에 대한 물음에 고난으로 답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장차에 다가올 부활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놀라울 지 아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모든 사망의 권세들은 굴복하며 하나님은 그를 만물 위에 높이 세우셔서 만왕의 왕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으면, 그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고난의 십자가가 있기에 부활의 영광이 큰 것입니다. 고난은 내가 보면 커 보입니다. 특히 그 고난 속에 파묻혀서 보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장차 받을 영광에서 바라보면 이 고난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고난 후에 주어지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영광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말로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종은 주인의 말에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복종합니다. 그런데 종이 주인에게 주인이여 이렇게 해야 합니다주장하거나 주인이여 이걸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종이 주인에게 주장을 하고 강요를 합니까? 그런데 주님을 믿는 자들이 종종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을 나의 주님이라 부르면서, 동시에 하나님에게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강요합니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것 중에 가장 많은 것이 하나님, 고난은 짧게 영광은 빨리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는데, 제가 하나님께 이렇게 하는데 고난이 웬 말입니까?”, “고난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껏 해야죠. 왜 이렇게 고난이 깁니까?”, “왜 이렇게 영광이 속히 오질 않습니까?”라고 주장하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 알아야 할 사실은 고난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이것을 인정하셨습니다.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0:23) 영광을 주시고 안 주시고는 우리들이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을 내세우면서 고난을 짧게 영광은 빨리이렇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6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라고 말합니다. 고난 중에 겸손을 배우고, 고난 중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거하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종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3-44)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내가 크고자 하고 높아지고자 할 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낮아지고자 하고 종이 되고자 할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 있는 신학자 중의 하나이며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교수직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발달장애아 시설에 들어가서 그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돕고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는 몇 개월 동안 침묵하다가 [예수 이름으로]라는 책을 쓰면서 답을 했습니다. 나우엔 교수는 말하기를 그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을 추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하버드대 교수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나의 저서 20여권도 뭇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올라가는 길에서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 발달장애아를 만나서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예수님을 내리막길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종의 자리로 내려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삶이 우리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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