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면, 눅 24:1-12

기독교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면, 눅 24:1-12

NZ광림교회 0 2323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무덤을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에 부활하신 주님을 꼭 만나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만난 확실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매년 맞이하는 부활주일에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하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만나고자 하면 만나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거룩하고,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소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시는 기도는 주님 내가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입니다. 우리가 이 소원을 가지기만 하면,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먼저 아시고 불러주신 것처럼 부활의 주님은 우리 이름을 불러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르다가도 음성을 듣게 하시고, 기도를 하다가도 듣게 하시고 꿈에라도 만나 주십니다. 오늘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면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 세 가지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1. 무덤의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무덤의 신앙이란 한 마디로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는 신앙입니다. 본문의 여자들이 예수님을 찾기 위해 간 곳은 무덤이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1)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한 향품을 가지고 갔습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 무덤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들이 찾은 것은 살아계신 예수님이 아니라 죽은 예수님의 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2-3절 보니, 무덤 입구를 막던 돌이 옮겨져 있었고, 들어가서 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거기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여자들에게 굉장히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사랑했던 예수님의 시신마저도 누군가 훔쳐 갔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았고, 예수님의 시신을 보러 왔습니다. 그런데 무덤은 비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 너희가 예수님을 찾되 더 이상 무덤에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천사들이 한 말도 동일합니다. 4절에서 여자들이 막 끌탕하고 있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서는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살아나셨고 부활하셨는데 어찌해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을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죽은 예수님으로 여길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루터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추진하던 루터가 완전히 낙심해서 사흘을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루터의 아내 케이티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누가 죽었습니까?”, “예 죽었습니다. 바로 당신의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불경스런 말을 할 수 있소?”, “아니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이 이렇게 포기하고 누워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내의 한 마디가 루터를 깨웠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은가?’ 그는 벌떡 일어나 아내와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가서 강력한 성령을 체험합니다. 결국에는 종교개혁에 승리하게 됩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의 모습, 말과 행동은 혹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이 죽은 것처럼 살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무덤에 머무르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무덤에 머무는 신앙은 슬픔과 자기 연민에 갇혀 살아가게 되고, 의심과 회의에 갇혀 살아가게 되며 두려움과 절망에 갇혀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면 무덤에 머무르는 신앙을 벗어나야 합니다. 무덤을 벗어나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과거에 내게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인들은 슬픔과 절망에 싸여 무덤에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보고 충격을 받고 화가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어디로 갔는가?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시신마저 훔쳐가다니...” 그런데 슬픔과 절망과 충격과 분노에 싸인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매우 중요한 말을 전합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24:6) 천사들의 말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반드시 주님이 내 삶 속에 주신 말씀들을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응답을 주실 때 말씀을 기억나게 하심으로 응답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기도하다가 갑자기 전에 들었던 말씀이 생각이 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부활의 시작은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생각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고 애쓰다가 하나님 말씀이 생각나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기적과 역사를 체험하게 하시는 것을 믿는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영적인 세계가 열려야 합니다.

 본문의 여자들은 사도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요? 본문 8절에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눈으로 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말씀이 그 마음에 살아있고 말씀이 믿어지는 자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들의 말을 들은 사도들의 반응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11)였습니다. 사도들이 여자들의 말을 믿지 못한 이유는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금 바로 내 옆에서 역사하셔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엘리사 선지자 때, 한번은 아람의 수많은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를 잡으려고 엘리사의 집을 포위했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아침에 일어나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립니다. 그때 엘리사가 덤덤히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이 말에 종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우리와 함께 한 자가 많다니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이 청년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드디어 종의 눈이 열렸습니다. 눈을 열어서 보니 거기에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은 하늘의 군대가 둘러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집에는 아람 군대만 온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군대가 와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문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도 이미 찾아옵니다. 그런데 영적인 눈이 가리어져, 영적인 세계가 닫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서 그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가 열려야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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