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스승 되시는 은혜, 요 14:16-18, 롬 8:26

기독교


 

성령이 스승 되시는 은혜, 요 14:16-18, 롬 8:26

NZ광림교회 0 3072

 인생을 살면서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만큼 귀하고 보람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리더십은 타인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이란 자신의 빛을 밝혀 타인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가게 하는 삶입니다. 한 맹인이 밤에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습니다. 맹인이 지나가던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은 맹인이 등불을 들고 걷는 모습을 보고 맹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소. 아니 앞도 못 보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러자 맹인이 "당신이 등불을 보고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선한 영향력이란 타인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있어 선한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치는 사람들은 스승, 교사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강수진씨는 원래 고전무용을 하다 뒤늦게 발레에 입문했습니다. 처음엔 발레가 어렵고 지겨웠습니다. 그녀는 아주 열등생이었고 합니다. 그런 그녀가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기까지 공헌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캐서린이라는 교사였습니다. 캐서린은 열등감에 빠진 강수진씨를 만날 때마다 너는 팔 다리가 길고 예뻐서 조금만 노력하면 멋진 동작을 만들 수 있어. 너의 동작들은 한 편의 시와 같단다.”라고 격려했습니다. 강수진씨는 스승의 말에 힘을 내서 발톱이 빠지고 발가락이 뭉그러지기까지 연습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스승이 가지는 영향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승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선하게 이끌어줄 스승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참 스승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끝까지 믿고 따를 스승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스승의 날이자,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그래서 성령이 스승 되시는 인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성령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스승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3장부터 시작합니다. 131절에 보면, “...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줄을 아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후 9시간 뒤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와중에 제자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141절에서 얘들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면 제자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며 세심하게 안심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떠난다고 마음에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한 분을 소개합니다. 14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예수님은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해서 한 분을 보내달라고 구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옆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가까이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보혜사는 우리 옆에서 도와주시고,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고 꽉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6절에는 예수님께서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 성령은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2. 성령은 진리의 영이 되셔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본문 17절은 그는 진리의 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와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다 알지 못해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성경이 지금 당장 다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긴가민가하던 말씀이 확실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싱숭생숭하던 말씀인데, 어느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로 감격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신약성경 4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 당시에 국회 속기사처럼 예수님 옆에 앉아서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고 난 후 성도들은 예수님이 곧 오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102030년 지나도 예수님이 안 오시자 사람들은 아 예수님 말씀을 기록해야겠구나. 예수님이 계실 때 말씀을 듣고 사역을 지켜봤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기록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기록한 것이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기억에만 의존했다면 과연 믿을 만할까요? 그런데 이미 30년 전, 40년 전 일인데도 그들이 다 기억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모두 기억했습니다.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본문 26절에 비밀이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비록 30, 40년 전 일로 그들의 지식으로는 부족했지만 성령이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 모든 사역이 이해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왜요? 어떻게요? 성령이 그들 안에 계셨고 성령은 진리의 영이셨기 때문에 진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안에 이 성령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령은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3.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연약함이란 우리가 예수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물 위를 걷게 되었지만 믿음이 연약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바람과 파도를 보게 되었을 때 바다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했습니다. 그는 블레셋 군대가 골리앗을 앞세워 하나님을 모욕할 때 목숨 내 놓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철저했던 다윗도 육신을 가진 존재였기에 넘어졌습니다. 그 연약함으로 다윗도 많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주님 따르겠다고 하고서 돌아서면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또 그렇게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신을 보고 한심해하고 절망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시험이 오면 기도해야 하고 기도로 어떤 역경이든 이겨야 한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어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시험과 괴로움이 닥치면, 기도하기를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우리 연약함입니다. 이 연약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로마서 8126절 말씀에 한없이 은혜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을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고 강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도 능히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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