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시1:1-3

기독교


 

복 있는 사람, 시1:1-3


사람은 누구나 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모든 이들이 주고받는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성경에도 복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시편은150편이나 되는 긴 말씀인데 그 시작이 복 있는 사람은입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에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팔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신명기 286절에 보면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라는 복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러한 성경이 말하는 복은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다른데, 먼저 세상이 말하는 복은 두 가지 차원입니다. 1) 첫째는 소유입니다.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행복의 척도가 됩니다. 2) 둘째는 환경과 여건입니다. 내가 지금 처한 여건이 이게 아니라 저거라면 행복할 텐데...”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소유나 환경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입니다. 시편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처럼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만족의 삶입니다. 그것의 비결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시니...”에서 알 수 있듯이, 1) 여호와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심 2) 나의 존재를 알려주심 입니다. 양에게 목자만 있으면 되듯이,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되심이 복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복은 존재의 복입니다. 복된 존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본문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죄의 길을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여러 가지를 열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맨 앞에 둡니다. 그렇기에 시편 11절의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첫 번째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런데 여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복 있는 사람은 ...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표현하면 좋을 텐데, 오늘 말씀에는 따르지 아니하며, 서지 아니하며, 앉지 아니하며등과 같은 긍정이 아닌 부정의 표현으로 복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지 말라는 내용이 우리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명과 직결된 것, 바로 악한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길에요, 내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1절은 사람이 악에 빠져드는 단계와 과정들을 잘 보여줍니다. 세 가지 동사 따르고, 길에 서고, 자리에 앉는 것- 가 등장합니다. 먼저는 악인의 꾀를 따릅니다. 귀를 기울이다 동의하고 마음으로 같이하여 죄인의 길에 섭니다. 죄인들의 길에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행하게 됩니다. 그 결과 죄 가운데 자리를 잡고 틀어 앉고 마는 것입니다. 1절 마지막에 오만하게 된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아니라고 알려주어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알려 주셔도 듣지 않게 됩니다. 이 길의 끝이 바로 죽임이요 사망입니다. 하지만 복 있는 사람은 이 죽음의 길, 사망의 길을 가지 않고 빨리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알려 주실 때 이게 아니다 싶으면 빨리 악을 빠져나오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나에게 잘 해주고, 아무리 그게 재미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자리라면 속히 거길 벗어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바로 이 1절의 복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렇게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은 저 악한 죄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기가 평생 복이라고 여겼던 재물을 포기했습니다. 그 말은 그 재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을 경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악한 죄의 길에서 벗어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다른 아무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존재가 악한 죄의 길을 버리고 죽음의 길을 벗어났다면 그것으로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묵상되는 사람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2절은 복 있는 사람의 두 번째 모습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묵상은 그냥 한번 생각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곱십어 생각해서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렸을 때, 그는 나라 안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은 마음에 두고 곱십어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울의 마음을 떠나지 않고 계속 묵상한 결과, 그의 마음에는 미움과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종국에는 그 증오심으로 자신마저 제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울의 비참한 최후의 원인은 그릇된 묵상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오늘 무엇을 묵상하고 사느냐가 우리 삶을 달라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괴적이 되게 하는 묵상을 물리치고, 살리고 생명을 주는 묵상을 해야 합니다. 본문 2절은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세상의 말들, 사람의 말들을 묵상하면 자신을 상하게 하고 파괴하며 멸망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생명과 지혜가 나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생명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는 사람입니다.

3절은 복 있는 사람의 세 번째 모습을 전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복 있는 사람을 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 걱정이 없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늘 푸릅니다. 또한 때가 되면 싹이 나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의 삶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미국의 존 홉킨스 대학의 교수요 외과의사인 켈리 박사는 전도자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양복에 장미를 꼽고는 했는데 신기한 건 한참을 지나도 시들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금방 꽂은 것 같아서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하루는 학생들이 그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양복 안쪽을 뒤집어 보였습니다. 양복 안쪽에는 조그마한 물병이 있었고 거기에 장미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켈리 박사가 항상 잊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사람이 시들지 않고 향기 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뿌리를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두어야 합니다."라면서 전도했다고 합니다.

켈리박사처럼 가장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인생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인생은 하나님께 뿌리를 두는 인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닙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께 뿌리를 두는 인생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뿌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내려져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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