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봇의 축복 (우리를 위해 넓게 하시는 하나님), 창 26:12-22

기독교


 

르호봇의 축복 (우리를 위해 넓게 하시는 하나님), 창 26:12-22

본문은 이삭이 이방 땅 (블레셋 땅) 그랄에 거주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 땅에서 이삭은 농사면 농사, 목축이면 목축, 모든 것이 참 잘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땅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였고, 목축에 필요한 우물을 막아버렸습니다. 본토인의 시기 속에 외지인인 이삭은 억울하지만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주지를 옮긴 곳에서 샘을 파니 또 물이 나왔습니다. 20절에 그곳의 이름이 에섹이라 불렀습니다. 물이 나오자 그 땅 목자들이 우물을 또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또 옮겨 우물을 팝니다. 21절에 우물이름을 싯나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나 또 우물을 빼앗깁니다. 포기를 모르던 이삭은 다시 자리를 옮겨 우물을 팝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이 상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삭이 그 우물에 이름을 붙이기를 르호봇이라 붙이는데, 그 뜻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입니다.

이삭은 이방 땅에서 빼앗기고 쫓겨나고 몰리는 삶을 사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에 그를 넓게 하셨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참 믿음의 역사가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지경, 사랑의 지경, 리더쉽의 지경 같은 영적인 지경이 좁아지는 역사가 아닌 넓어지는 역사입니다. 이렇게 넓게 하시는 르호봇의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가지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12-13절은 짧은 두 절이지만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이삭이 그랄 땅에 와서 농사를 했는데, 농사가 너무 잘되어 백배의 수확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13절에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졌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거부가 되었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12절에 눈길을 끄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거부가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복된 인생이 되고 넓어지는 인생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원래 농사꾼이 아니라 목축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방 땅인 그랄 땅에 왔으니 먹고 살기 위해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잘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또한 이삭 역시도 그 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세 가지 요건으로 인해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 이상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2장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주신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순종한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여 모리아산 단 위에 올려놓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더 대단한 사람은 이삭입니다. 당시 이삭은 청소년으로 아버지에게 얼마든지 반항하며 힘으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순순히 결박을 당하고 제단 위에 누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으니 이삭도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

이삭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복을 받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그랄 땅으로 갔을 때 그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262-3)”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이 바로 그랄 땅입니다. 이삭은 그랄 땅에 하나님의 약속을 지니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3) 겸손, 즉 낮아진 마음입니다.

본문이전 이야기는 이삭이 흉년을 피해 그랄 땅에 들어가 망신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애굽에 가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불렀듯이, 이삭도 그랄 땅에 들어가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만 이삭과 리브가가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 왕이 발견합니다. 하지만 징계를 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브가를 범하는 자는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삭은 자신 스스로가 얼마나 형편없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는가를 느꼈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비겁함으로 인해 비참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통해 겸손해졌습니다. 내가 정말 형편없는 죄인이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겸손해진 것입니다.

 

2. 올라가며 우물을 파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히말라야 고산족들은 양을 매매할 때 양의 성질에 따라 값을 정한다고 합니다. 양을 가파른 산비탈에 놓아두어, 양이 비탈 위로 풀을 뜯으러 올라가면 양의 값이 오르고 반대로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값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위로 올라가려는 양은 현재는 힘이 들더라도 넓은 산허리의 미래를 갖게 되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양은 현재는 수월하나 협곡 바닥에 이르러서는 결국에는 굶주려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올라가는 신앙이 가치가 있고 넓은 영적인 산허리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분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제가 전에는 왜 이 기쁨을 몰랐는지 모릅니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게 이제는 보인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올라가서 높은 곳에서 보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이삭이 처음 우물을 파고 빼앗긴 곳이 그랄 땅입니다. 우물을 빼앗긴 그는 20절에 에섹이란 곳으로, 21절에 싯나라는 곳으로 옮겨갑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그 옮겨간 방향이 평지에서 출발해서 산골짜기를 타고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비록 올라가는 게 힘들지만 올라가고 올라갔더니 하나님이 그를 넓게 하신 것입니다.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니라 우물도 팠습니다. 우리도 우물을 파며 영적으로 올라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우물을 파시기를 바랍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길 때 우리를 넓게 하십니다.

세상이 악을 대하는 방법은 악을 악으로 갚고, 악을 악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입니다. 로마서 12: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삭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시기해서 우물을 빼앗고 메웠던 사람들을 다 이기고 넓은 자리를 갖게 되었음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르호봇의 축복, 하나님이 우리를 넓게 하신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팔복의 말씀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거나 수완이 좋은 자가 아닙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악을 악으로 갚는 자를 하나님은 넓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그 사람을 넓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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