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는 신앙, (삼상 2:30, 단 6:10-14)

기독교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는 신앙, (삼상 2:30, 단 6:10-14)


아이의 뇌를 깨우는 존댓말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존댓말 사용의 놀라운 결과를 알려줍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년 전부터 전교생이 반말 대신 존댓말을 사용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에게서 욕설이 사라지고 왕따와 싸움이 줄어든 것입니다. 책의 저자는 아이가 태어나서 10세까지 존댓말을 쓰게 되면 아이의 인성은 물론 사회성과 학습능력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존댓말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존댓말에 담긴 존중이 갖는 힘 때문입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늦은 밤 한 노부부가 여관을 찾아왔습니다. 노부부는 젊은 직원에게 여러 곳을 다녔지만 방을 구할 수 없었던 사정을 말했지만 직원은 빈방이 없음을 정중하게 설명했습니다. 노부부가 실망한 표정을 짓고 돌아서자, 젊은 직원은 평소 어떤 경우라도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신념대로, 노부부에게 자신의 방이 쓰라고 내어드렸습니다. 다음 날 노신사는 방값을 지불하면서 당신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호텔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라며 내가 당신을 위해 호텔을 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2년 후, 어느 날 젊은이 앞으로 초대장과 뉴욕 행 열차 티켓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노부부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노신사는 젊은이를 데리고 큰 거리로 가서 높은 빌딩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호텔운영을 그에게 맡기기 위해 이 호텔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에게 은혜를 베푼 노신사는 윌리암 왈도르프 아스톨이었습니다. 이것이 존중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사람을 존중해도 이와 같다면 하나님을 존중할 때는 더 큰 축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0절은 말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시는 삶은 어떤 삶인지 함께 3가지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이 먼저가 되는 삶이다.

3,40대 남자 회사원 850명을 대상으로 당신 인생의 1순위는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돈과 일51%로 가장 많았고, ‘가정40%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것에 대해 뭐라고 할까요? 성경은 이것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앞에 와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33)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먼저가 되는 삶입니다.

삼상 230절은 하나님께서 제사장 엘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엘리는 실로라는 성소에서 일생을 바치며 말씀을 가르치던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런 엘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한 마디로 하나님은 엘리에게 너는 나를 존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9절에 나오는 것처럼 엘리는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중히 여겼습니다. 이것이 엘리의 큰 실수였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녀를 위한다고 하나님보다 자녀가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코 자녀를 위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그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먼저가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존귀하게 하시는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존중하는 비결은 그 사람이 한 말을 기억하며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212절 이하를 보면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큰 죄악을 범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진 제물을 착복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엘리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악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악행을 금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를 위한 길이였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반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였습니다. 본문 속 다니엘은 그를 미워하는 자들로 인해 올무에 빠집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는 것을 이용하여 그를 죽음의 길로 밀어 넣고자 하였습니다. 왕의 신상을 만들고 다니엘이 거기에 절하지 않게 하여 사자굴에 집어넣으려 했습니다. 다니엘 6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은 자기 앞에 큰 올무가 놓인 것을 알았습니다. 사자굴에 빠지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 말씀을 지켜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로 하여금 올무를 피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 앞에 올무를 놓습니다. 그때 그것을 이기는 능력은 다니엘처럼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떤 시간보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링컨은 백악관 집무실 안에 기도실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과 만났습니다. 이는 그가 성공적으로 대통령의 직임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다니엘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밥이 될 것도 알고 있음에도, 기도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거 하루 빼 먹는다고 어떻게 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기도 한 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에릭 리들(Eric Liddell, 1902-1945)은 영국 선교사 자녀로 어려서부터 육상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에릭은 1924년 파리올림픽에 100m 영국 국가대표로 참여하는데, 금메달 후보였던 그는 돌연 경기를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경기 일정이 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비판이 그에게 쏟아졌음에도 주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올림픽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m400m를 출전하여 동메달과 금메달을 따게 하셨습니다. 특히 에릭은 400m에서 신들린 사람처럼 달렸는데, 결승전 테이프를 끊고 쓰러진 에릭의 손에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삼상2:30)"라는 한 쪽지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달리기와 같습니다. 때로는 그 경주가 힘들어 더 이상 달릴 수 없고 쓰러질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자에게 승리할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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