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시 22:1-3, 대하 20:21-23)

기독교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 (시 22:1-3, 대하 20:21-23)

 

어느 교우가정에서 어린 아이가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아이에게 무엇을 만들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아빠에게 지금 만드는 것은 교회이며 교회에서는 조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빠는 미소를 띠었습니다. 왜냐하면 평소 교회에 갈 때 마다 아이에게 조용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아이 스스로 조용해야한다고 하니 기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빠는 아이에게 교회에서는 왜 조용해야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말하기를 교회 안의 사람들이 설교시간에 다 잠이 들었기 때문에 조용해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어린 아이에게 교회는 설교를 들으면서 자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교회하면 설교를 생각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예배하면 설교를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가 예배 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를 드리는 회중의 입장일 뿐,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 은혜로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찬송과 감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좋은 예배는 설교가 좋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배가 좋은 예배입니다.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은혜를 3가지로 나누겠습니다.

 

1. 찬송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이분은 돌아가시기 몇 주일 전부터 기력이 쇠해져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찬송가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그의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인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부르셨습니다. 그는 말조차하기 힘든 곤고한 상태였지만 찬송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찬송할 때 힘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찬송의 능력입니다.

본문 속 다윗의 형편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시편221-2절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다윗은 하나님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가장 큰 고통과 괴로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더 이상 계시지 않고 나를 떠나신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 굳게 믿어지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장 큰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믿는 자에게 중요합니다. 3절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방금 전까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말하던 그가 하나님이 찬송 중에 계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하나님이 찬송 중에 임하시더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울 때 하나님께 찬송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송가 549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는 찬양은 슈몰크 목사님이 지은 찬양입니다. 하루는 그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이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목사님은 어린 두 아들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잿더미 속에 서로 부둥켜안은 채 숨져있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내외는 사랑하는 아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목사님 내외의 마음에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 위로로 만든 찬송가가 바로 549장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보화와 같은 찬양입니다. 이와 같은 찬송가를 온 마음을 다해 부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찬송은 구원받은 자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시편2222절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며 두 가지를 말합니다. 먼저는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합니다. 그리고는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송한 데에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19-2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라며 하나님께 다급한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간구가 끝나자마자 그는 21절에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라고 구원의 감격을 전합니다. 그것은 22절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는 찬송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찬송하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끝내고 홍해를 건너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너 그들이 제일 먼저 행한 것은 찬송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세례 받은 자들은 영적인 홍해를 건넌 자들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구원받은 자로 찬송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찬송할 때 위기가 물러가고 환경이 변합니다.

역대하 20장 말씀 속 여호사밧은 히스기야, 요시야와 더불어 유다의 3대 선왕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큰 삶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1절에 보면 세 나라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해왔다고 전합니다. 이어 2절은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왔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3절에 여호사밧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그러나 그는 두려움에 빠진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3절 후반부에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라며 하나님께로 낯을 향했습니다. 이런 여호사밧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처방을 주셨는데, 그것은 찬송이었습니다. 21절의 말씀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이것이 성도가 위기를 맞이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반응인줄로 믿습니다. 찬송할 때 두려움과 위기가 물러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사밧은 연합군을 싸우러 나갈 때 성가대를 앞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며 찬양하게 했습니다. 전쟁통에 성가대를 앞세워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노래하는 헌병이라고 불린 미해병 셜츠 하사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전장에서 수시로 찬송을 부르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했지만, 군인들은 그의 찬송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셜츠 하사는 보초를 서다가 적군의 습격을 받아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아군의 습격에 미군은 당황하여 겨우 응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셜츠 하사의 찬송 소리였습니다.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이 찬송이 전장에 울려 퍼졌고, 미 해병들은 그 소리에 용기백배하여 싸웠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적군이 다 물러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어떤 위기가 몰려온다 할지라도 찬송할 때 위기가 물러나며 환경이 변화되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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